10여 년간 한국에서 살아온 미국인 친구 하나가 우리나라 모 TV 프로그램 중「장수만세」라는 프로에 대해 칭찬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칭찬은 물론 그 제작상의 기술적인 면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프로」가 찾고 있는 경로사상(敬老思想)과 가족과 함께 명랑하고 건강하게 노후(老後)를 즐기는 한국 노인들이 부럽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한국의 노인들이 모두 그 장수만세에 나오는 분들처럼 행복한 생활을 하는 건 아니다. 많은 노인들이 의지할 곳이 없거나 있어도 그들로부터 거추장스런 존재의 취급을 받아 외롭게 지내고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거니와 얼마 전 자녀들의 학대에 못 견뎌 자살한 노부부의 얘기는 아직도 우리 기억에 남아있는 한 가지 예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더러는 불행한 노후를 원망하며 사는 분도 있긴 하지만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오래 살고 싶어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노인의 <일찍 죽고싶다>는 얘기는 처녀의 <시집 안 가겠다>는 얘기나 상인이 <밑지고 판다>는 얘기와 함께 3대 거짓말이라는「조크」도 있잖은가.
금세기에 들어서 확실히 인간의 수명은 괄목할 만한 연장을 보았다.
이것은 물론 항생제의 개발과 예방의학(豫防醫學) 및 공중보건학의 발달에 그 큰 공이 있다고 할 것이다.
이리하여 오늘날 선진 각국은 이미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고 있어 가히 장수를 누리고 있다고 할 만하며 우리나라도 65세에 가까운 평균 수명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지난 10여년 사이에 무려 같은 10년 정도의 수명 연장을 해놓은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수명만 연장되어 오래 살게 되는 일만 가지고 즐거워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얼마 전 나이 65세로 정년퇴직을 하게 된 어느 교수 한 분이 아직도 일할 수 있는 나이에 퇴직을 강요당하는 서러움에 대해 항의조(抗議調)로 글을 쓴 적이 있다.
더러는 이 글을 읽고 노망(老妄)스럽다고 핀잔을 하기도 했을 테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 항의는 전혀 개인적이 아닌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괴테의「파우스트」에 보면「메피스트ㆍ텔레스」는 누구나 알맞은 노동을 계속해야 오래 살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의 유명한 노인병 학자 스티그릿츠 박사도 사람은 나이 60을 넘어서도 휴식 시간은 다소 늘릴 필요가 있긴 하지만 일만은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한 일이 있다.
또 세계 각처의 백 세 이상 장수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장수 비결에 대해 면담 조사한 알렉산더ㆍ립 박사도 적당한 육체적 또는 정신적 노동을 계속하는 것이 그들의 장수 비결임을 발견했다고 쓴 적이 있다.
실제로 나이 90에 차이코프스키의「비창」을 지휘한 스토코프스키, 80세를 넘어서 세계적인 철학적 저술을 한 버트런드 럿셀 그리고 나이 80이 넘도록 그 섬광 같은 사고로 세계를 정신적으로 이끌어오던 아놀드ㆍ토인비 교수 등등 이들에 대한 우리의 존경심은 단지 이들이 나이를 많이 먹었음으로 해서 받는 예외적인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나이 불과 50만 넘어도 자의건 타의건 모든 사회 경제적 활동을 중단하고 집에 들어앉아 있어야 하는 현상은 어떤 의미로나 옳지가 않은 것이다. 경로사상의 바람직한 형태인 우리나라의 가족제도(자녀가 부모를 모시는)를 더욱 발전시키되 노인들에게도 적절한 일을 하시도록 하는 의도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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