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초「근대화」라는 말이 쓰여질 때 그 의미는 역사적 시대 구분의 개념과 연관되면서 개념 정립을 위한 잇단 논쟁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지 슬그머니「산업화」란 말로 바뀌어 버렸다. 언뜻 보면 단순한 용어의 대체인 듯 보이지만 실로 여기에 간과해서는 안 될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산업화 시대의 도래
근대화란 비록 잘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런 대로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 자유 정의 등 이념적 가치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라 한다면 산업화란 합리와 능률이라는 궤도 위에서의 수량적 변화 내지 발전만을 뜻한다.
따라서 보다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근대화라는 말보다는 계량적이고 구체적인 산업화라는 말이 한 사회가 이룩한 성과를 보다 선명하게 측정할 수 있고 구성원들에게 보다 강력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기에 정책 용어로 보다 더 합당하였는지도 모른다.
◆비인간화 문제 야기
최근 우리의 경제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룩하였으며 이러한 성과는 여러 가지 계량적 측정을 통하여 강력한 호소력마저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우리 사회의 급격한 변화는 자연 발생적이거나 혹은 수동적인 변화가 아니라 이른바 산업화라는 계획된 변화의 결과이다. 그러나 계획된 변화의 주도 정책으로서는 산업화란 스스로 한계를 갖고 있다.
처음부터 국민들은 경제 성장이라는 정책을 선진 공업국의 대열에 끼일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했으며 그리고 경제 성장이 이루어진 후에는 단순한 경제적 풍요뿐만 아니라 우리가 궁극의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ㆍ자유ㆍ정의 등의 가치도 실현되고 누릴 수 있게 되리라는 전제 아래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인 풍요란 궁극적 가치 향유의 필요조건은 될 수 있으나 충분조건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며 더욱이 부(富)의 생산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 문제들과 달성한 부의 분배에 있어서의 문제점, 그리고 지나칠 정도의 대외 의존적인 경제 구조 등으로 보아 산업화란 계산된 오도(誤導)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마저 일으킨다.
산업화되고 있는 사회에 적합한 가치관이란 물질적 성취나 경제생활의 향상이다. 따라서 합리와 능률에 지장을 가져오는 일체의 요소는 배제되게 마련이다. 이 같은 생리는 산업화라는 도구로 하여금 단순한 수단이라는 영역을 벗어나 목적까지도 지배하게 만든다. 결국은 산업사회의 비인간화라는 문제까지도 야기시키게 된다.
◆윤리 가치관의 확립
가속도적 변화를 맞게 되는 사회는 어느 사회이든지 그 안정 기반이 흔들리게 되며 그럴수록 발전적 사회 통합이 요청된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는 의형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내면적 차원에서 충족되어야 한다. 즉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적합하고 타당하게 받아들일 윤리로서의 가치관이 존재해야 한다. 이러한 윤리의식은 사회 질서의 기틀을 마련하게 하고 사회 안정의 바탕을 이룩하게 된다.
오늘 우리에게 사회 통합의 가치관이 되기에 적합한 윤리 체계는 마련되어 있지 못한 것 같다. 따라서 물질적 가치관에 우선하는 절대가치의 확립이 필요하며 여기에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이 필요한 것이다. 가톨릭 교회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모든 인간의 완전한 계발에 있으며 전인적 계발이란 인간의 존엄성 자유 정의라는 바탕 위에 비로소 가능하다. 이 같은 기반은 곧 윤리의식이며 인간 사회에 올바른 윤리의식의 형성과 이를 실천하도록 설득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기관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교회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전인적 계발을 저해하거나 간섭하는 일체의 요소, 더 나아가서 비인간화의 문제는 곧 교회 자신의 문제이며 교회가 앞장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현대 교회의 과제
산업화가 지니고 있는 물질적 가치관과 비인간화의 속성을 가장 예리하게 지적한 글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교황 삐오 11세의 회칙「Quadragesimo Anno」(1931년)의『보잘 것 없는 물건은 공장에 들어가서 사치가 있는 것이 되어 나오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인간은 공장에 들어가서 쓰레기가 되어 나온다』라는 말로 집약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할지 지적하신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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