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8일에 막을 내린 춘계 주교총회의 메시지는 3월 5일에야 기자들의 손에 들어갔다. 이와같은 조치는 대내용(?) 메시지로 하려는 배려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신문들은 메시지 전문을 게재하는 등 크게 기사화 함으로써 완전히 대외용처럼 되고 말았다. 주교단 메시지가 매스콤의 각광을 받는것은 바람직하고 또 그래야만 한다. 그런데 메시지에 대한 해석은 신문이나 여야의 입장에 따라 장님들이 코끼리를 말하듯 구구했다. 그 뜻을 파악하는 각도가 달라 혼란이 생긴것이다. ▲상치된 반응들은 크게 두가지로 나눠졌다. 메시지 서론부분「그동안의 행동을 반성하고」와 1항의「이웃을 비난하거나 고발하는 기도가 되어서는 안되겠다」3항의 「정치세력에서 초연한 입장」에 역점을 두는 측은 「일대영단」으로 받아들였다. 한편 1항의 「인권보장과 사회정의를 구현 … 계속 기도」와 2항의 「부정부패 사회부조리 인권유린 등을 고발하는 교회의 발언권 계속」에 주목하는 측은 『종래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무엇보다 혼란을 가중시킨 것은 메시지가 『인권회복과 정의구현을 위한 기도회를 금하고 교회 사용도 금지 가능』이라는 보도였다. 이 같은 보도는 의사전달 과정이나 수용태도에 어딘가 큰 문제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했다. 주교회의 사무총장은 즉시 오보임을 밝혔고 두봉 주교와 김몽은 신부는 불이 나거나 축대가 무너질때 이웃이 놀라거나 불안해한다고 그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있는가고 반문 기도회 금지보도를 일축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어디서 출발되었으며 무엇을 의미하는가. 많은 지식인들은 신문의 1단기사를 머리기사보다 중시하는 버릇이 생겼고 그 배면을 유추해서 읽는 슬기도 배웠다. 당국이 『그런일 없다』하면『아하! 정말 그런일이 있었구나』하고 확신하도록 길들여졌다. 무엇을 의식하고 인식하는데 있어 분열과 괴리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는것이다. 메시지의 해석이 구구한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이제 주교단 메시지에도 해석에 해석을 달아야 할만큼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이러한 현실에 놀라고 있을때는 아니다. 때문에 적지않은 사람들이 메시지중 세 번이나 언급된「윤리적 판단」에 궁금증과 기대를 갖고있다. 현재의 정치질서에 대한 주교단의 윤리적 판단이 무엇인지 알고싶은 것이다. 메시지에 대한 해석이 구구한 근본이유는 바로 이「윤리적 판단」이 결여된데서 나왔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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