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파란 얼굴을 하고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엄마 등에 업혀 찾아온 5살 난 영일이.
미카엘라란 말이 설익어서인지『카라멜 수녀님 계십니까』하고 들어선 40대의 영일이 어머니는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심장병 어린이를 가진 어머니가 대부분 그러했듯이 울음을 터뜨렸다.
영일이를 등에 업고 전국 각지의 병원은 물론 굿하는 무당용하다는 한의원 등 수십 군데를 찾아 돌았던 그 어머니는「밀가루」로도「카라멜」로도 불리 우는 나의 이름을「카라멜」로 알고 찾아온 것이었다.
영일이는 선천성 심장병 중에서도 급히 수술하지 않으면 위급한 환자였다.
서울 세브란스병원에 급히 연락하여 수술비의 3분의 1로 수술 토록 주선했다.
수술비 2백만 원은 미국에서 교포들이 보내온 돈이며 부산 메레사 여고생들이 자진해서 거둔 금액 및 이름 밝히기를 꺼려하는 분들이 보내온 성금들로써 충당하게 되었다.
심장병 어린이와의 첫 인연은 기묘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73년 3월 메리놀병원에서 근무하던 때였다. 파르르 떠는 어린이가 병원 복도에 애처롭게도 쪼그리고 앉은 채 어머니의 손을 꼬옥 잡고 있는게 아닌가. 호소하는 듯 애소하는 듯 형언하기 어려운 아이의 눈망울은 맥없이 구르고 있는데 어머니 또한 절망을 안고 있는 듯 보였다. 당시 간호수녀였던 나에게는 마치 아기예수님을 보는 듯 했다. 성격이 무딘 나에게 하느님은 당신 사족을 마음 가득히 넣어주신 것이다.
이로부터 측은한 마음이 생겨 모금을 시작하는 한편 한미재단에 호소도 해서 미국의 병원에서 치료 받도록 요청도 하게 되었다. 그 후 부터 심장병 어린이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틈만 나면 심장병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부모와 상담을 가져 수술을 주선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날이 갈수록 나의 사무실을 찾는 사람이 많아져 앞도 뒤도 돌아 볼 여지가 없게 되자 83년8월 나는 지산보건전문대학 부 교수직을 사임하고 전적으로 심장병 어린이의 일만 돌보게 되었다. 죽음의 늪을 헤매는 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처절한 얼굴과 수술 후 완쾌되어 돌아가는 아이를 대하는 어머니의 희색이 만연한 모습에서 바로 십자가의 고통과 부활의 환희를 맛보게 되는 나의 생활. 이제 심장병 수녀라는 이름처럼 나의 모든 활동을 여기에 집중하게 되자 이 좁은 문틈으로 인간 사회를 엿보게도 되었다.
이 사회가 무척이나 인정이 메마르고 삭막하다고 하지만 이 땅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는 착하고 아름다운 심성을 지닌 분이 있다는 것을 절감하는 때도 있었다. 그리고 이 일을 하면서 퍽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휴일에도 휴식을 취할 겨를도 없이 불우한 어린이들을 돌보러. 서울의 먼 길을 매달 정기적으로 달려오시는 의사선생님. 수십 년을 닥은 의술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베푸시는 고마운 분들.
명동성당 앞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던 대학생들이 직접 들고 온 성금 4백 4만원으로 또 4명의 어린이가 새 생명을 찾기도 했다.
그들은 맹인도 아니요 구걸해서 자신의 생계를 잇고자하는 걸인도 아니다. 여대생까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행인들에게서 푼푼이 모금해주는 그 마음은 바로 사랑의 하느님마음을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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