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희랍의 어느 철학자의 말에『만물은 흐른다』고 하는 말이 있다고 들었다. 이어 연상되는 것이 동양의「제행무상」이란 말이다. 이런 말들의 그 깊은 뜻을 내가 어찌 어느정도나마 헤아릴 수 있겠는가마는 삶의 바다를 헤쳐나갈때 또 뉘라서 이런 말들을 깊은 감회와 더불어 중얼거려 보지 않을 수 있으랴. 하기는 변하지 아니하는 것도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만물은 다 변한다』고 하는 그 사실은 생성계가 끝나는 그때까지 불변의 원리로 있을 것이다. 또 이 우주를 관통하는 어떤 진리가 있다면(우리는 그것이 꼭있으리라는 것을 거의 한 절대적인 가정처럼 믿고 있지만) 그 진리 자체는 영원토록 변할리 없다. 변한다면 이미 영원한 진리일 수가 없기때문이다.
허나 이런 추상적인 논리의 연습은 우리네 범인에게는 자칫하면 마치 그지없이 아름답고 매혹적이면서도 또 그만큼 싸늘하게 느껴지는 먼 별처럼 핏기없는 존재가 되기쉽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시공, 감각을 통해서 느낄수 있는 이 생성계의 뭇 현상은 예외없이 변화의 흐름을 타고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듯이 자연계도 유전하고 자연의 품안에서 사는 온 생물도 그렇다. 종이 한 번 울려 한 사람의 생명이 탄생하면 어느덧 종이 또 한번 울려 배필을맞게되고 더욱 급행열차가 되어가는 시간의 어느정거장에서 세번째로 마지막 종이 울리면 묘비명이 흘러간 한 생명을 쓸쓸히 지킨다.
변한다는 것은 기실 우리 인간의 특권이자 숙명이다. 변하는 우리 인간 중에서도 특히 변화무쌍한 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이 아닌가 싶다. 인간의 마음을 뜻하는 한자의 하나인 「념」자를 뜯어보면 바로「금심」곧 지금의 마음이란 뜻이 된다는 말을 들었다. 이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지금의 마음이 마음이라면 지금의 마음은 지금의 마음 아닌 마음과 구별된다는 뜻이겠으나 오죽 마음의 변모가 활발하면 마음이 이런표현을 빌었겠는가.
우리의 마음이 변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마음은 자기뜻에 의해서도 변하고 남의뜻에 의해서도 변한다. 거울에 비유할 수도 있는 마음은 거울 스스로가 변하는동 시에 거울에 비치는 뭇그림자에 의해서도 변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변한다는 것은 곧 우리의 희망이자 두려움이다.
변화에는 방향이 있고 방향에는 따지고 보면 상승 아니면 하강의 양면이 있을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도 이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태중교인이건 아니건 간에 영세 이후 자기의 신앙의 도정을 가만히 반성해보라. 상승과 하강의 범주에서 한 번인들 순간인들 벗어나 본적이 있는가를.
남에게 베풀어 줄 수가 있는 사람, 근면하고 부유한 사람이 속하는 세계를 수학에서는 정수의 세계라고 말하고 남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 따라서 남에게 늘 부채를 짊어지고 있는 사람이 소속해있는 세계를 부수의 세계라고 말한다. 이 정수의 세계와 부수의 세계는 또 하나의 신비의 수인<영>을 매개로 해서 이어져 있다. 나는 흔히 신앙의 상태 또는 좌표를 이<정계>와 <부계>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때가 있다.
능동적인 자세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이웃사람에 대해서 무관심하지 않은 사람 이웃을 시샘하기보다는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한 사람은 그 신앙이 정계에 올라있는 사람이리라. 세상사람들이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을 때 죽음의 두려움을 무릅쓰고 옳은 말을 하는 의인의 신앙은 정계의 높은곳에 올라있는 것이리라. 어두움을 빛으로써 조금이라도 밝히는 사람도 그러하리라. 게으름을 몰아내서 끓임없이 일하는 사람도 역시 그러하리라. 그러나 신앙이 짐스럽게 여겨지는 사람 피동적인 자세로 신앙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직도 신앙의 부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아닐 수 없다.
부계의 심연에서 허덕이는 신앙인인들 어찌 없을 것인가. 허나 또 하나 딱한 것은 영세한지가 십년이 가까우면서도 늘 정계와 부계의 경계선을 그저 끊임없이 부침만 하는 경우이다. 나는 요새와선 다만『주여 내 안에 주를 모시기에 당치못하오나 한말씀만 하소서 내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하는 심정으로 딱하게 그러나 끈기있게 신앙을 붙들고 늘어질뿐이다. 언젠가는 신앙의 부계를 청산할 때도 있으려니 하는 상승에의 희망과 더불어…
▲지금까지 변갑선 신부님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 이번호부터는 시인 성찬경씨께서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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