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계 주교 총회에서 (9월 20일~23일)『사제 생활비는 각 교구별로 평준화하고、미사 예물은 공금화한다. 그 실시 시기는 각 교구의 다음 회계연도(1978)부터 한다』라고 결의 발표한 바 있다. 아울러 성격 규정에 대해서는『사제들의 생활 보장을 위한 것으로 해석한다』고 미리 유권적 해석을 내린 동시 평준화에 대해서는 균일화로 해석하지 못하도록「호봉제」가 포함되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한마디로 앞으로 사제들의 생활비는 각 교구가 정하는 규정에 따라 보장하기로 하고 그 대신 미사 예물의 수입은 일체 공금화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2천년의 교회 전통을 깨고 현대사회 구조에 적응하기 위해 내린 이번 조치는 매우 뜻 깊은 일이며 일단 모든 이가 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실천적 성공은 주교단의 결의 하나만으로 된다고 생각되지 않기에 몇 가지 문제점과 유의 사항을 지적해 보기로 한다. ①새로운 제도를 위해서는 설득력 있는 설명과 대안 제시가 선행되어야 한다. 부질없는 오해와 반대를 사전에 방지하고 전체의 호응을 얻기 위하여 각 교구 본부에서는 교구 사제들에게 충분한 이유 설명과 교구 실정에 맞는 대안 제시를 해야 하겠다.
그러나 선도적 역할을 다하지 않고 주교단의 결정 하나만 가지고 이유로 삼아 강행하려 한다면 쓸데없는 오해와 반발의 감정을 유발시키기 알맞을 것이다. 사실 그러한 오해와 반발이 이미 유포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밖에 사제들의 의견을 타진하기 위해서도 대안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 순서인 줄로 판단된다. ②미사 예물 공금화를 위해서 사제 생활비 평준화가 구상되고 결정되었다는 인상을 제거해야 하겠다, 여러 해 전부터 미사 예물 공금화가 논의된 배경 하에서 볼 때, 주교단이「사제 생활비 평준화를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여론은 아직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음을 알아야 하겠다. 특히 지금까지 사제들의 생활비에 대해서 주교단은 인색하였지(가난과 검소의 이름으로) 관대한 편이 아니었다는 것이 정평이고 보면 더욱 그러한 인상을 씻기 어려울 것이다. 사제들은 그 나름대로 이유와 주장이 있기에 사제들을 위한 진지한 성의가 먼저 보여져야 한다고 본다. ③평준화라는 표현 방법이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공정화(公定化)가 맞을 것 같다. 평준화는 균일화(均一化)로 해석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사제직이 같다 하여 사제들의 대우가 균일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 이하의 생각이다.
그렇지 않아도 사제들의 사회는 상하분별(上下分別)도 없다고 지탄받아온 것이었다면 이번 기회에 충분한 고려를 해야 마땅하고 지난날 행정상으로도 공정(公正)을 다하지 못하였다면 더욱 공정과 질서를 되찾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교회는 절대로 사회 상식에 뒤져서는 안 될 일이다. 사제들의 공정한 대우를 생각한다면 사제들의 사목 연륜、직책과 직위에 따른 신분생활의 유지、병약자 및 은퇴 사제들의 특수 사정에 대한 각별한 배려 등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일이다. ④미사 예물에 대한 사제들의 올바른 자세가 확립되어야 하겠다. 현재 듣고 있는 바에 의하면 (특히 미사 예물이 넉넉한 도시에 있어서) 미사 예물이 공금화 된다면 미사 봉헌에 대한 계몽이나 강조가 등한시 될 것이라든지, 신자들이 요구하는 시간의 미사 봉헌이 기피된다든지 미사 예물 중에는 사제 개인에 대한 사례가 포함된 것이라 해석하여 일부를 공제하는 현상까지 뒤따를 것이라든지 하는 말을 듣게 된다는 것은 심히 민망하고 수치스럽기도 하다. 사제들도 인간이기에 충분한 대우가 결여될 때 그럴 수 있을 것이다고 하여 주저없이 그런 말을 하는지는 몰라도 만일 신자들이 이런 사실을 안다면 실망을 금치 못할 것이다.
사제들은 신자들에게 개인의 수입보다 사제 공동체를 생각하고 물질적 보수보다 성직의 수행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일단 제도적으로 사제 생활비가 보장되었다면 사제들은 더욱 미사 봉헌의 의미와 받는 바 은혜들을 신자들에게 깨우쳐주고 많은 미사 예물을 봉헌할 줄 알게 하는 것이 사제들의 올바른 자세이고 임무일 줄 안다.
그리고 그 관리에 있어서나 사목에 있어서 외롭고 의의있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겠다. ⑤이와 반대로 신자들로서는 미사 예물이、봉헌하는 사제 자신의 수입이 되지 않는다 하여 미사 봉헌을 청하지 않는다거나 해서는 안 되겠다. 미사 예물의 공금화는 모든 사제들을 다같이 위하는 길이고, 교회 발전을 뒷받침하는 봉헌이라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다.
그밖에 명심해야 할 것은 신자들이 미사를 청할 때 반드시 자신 본당에서 일정한 시간을 한정하여 청하는 습성을 지양토록 촉구하고 싶다. 인간적인 심정으로서는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자기가 청한 미사가 봉헌되는 것을 확인하고 싶겠지만 그렇게 될 때의 결과는 일정한 본당에는 미사가 밀려 같은 신부가 여러 대의 미사를 봉헌하게 만들고 미사 없는 본당이나 특수사목에 종사하는 사제들은 미사 예물을 받지 못하고 마는 결과가 되고 만다. 이것이 오늘의 실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미사의 은혜는 미사 예물을 봉헌할 때부터 하느님께 받는 것이므로 은혜 자체는 어떤 사제가 언제 어디서 봉헌하는지 몰라도 괜찮은 것이다. 미사의 은혜를 이와 같이 이해한다면 신자들은 어떤 사제에게나 예물과 함께 지향만 알려주면 그것으로 넉넉하다. 미사 예물을 특정 사제에게 사례나 선물로 바치던 생각을 이제부터는 모든 사제들을 위해서 바친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끝으로 주교단이 모처럼 결정한 일이 반발의 대상이 되거나 흐지부지하게 넘겨 버려지는 것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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