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모이신 성교회는 해마다 11월이 되면 연옥 영혼들을 각별히 기억하고 기도와 희생으로써 저들을 도와주며 아울러 우리에게 닥쳐오고 있는 죽음을 예상하고 준비케 하는 위령성월을 지낸다. 차제에 우리는 우리가 숙명적으로 맞이하는 죽음을 묵상하며 새로운 생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종말을 맞이할 각오를 새롭게 하고 매일의 수양을 닦아 나아감도 요긴하다고 본다.
모든 물질이 본성적으로 파괴되는 것이라면 물질로써 형성된 인간이 죽는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흙에서 난 인간은 자연적으로 흙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신비이기는 하지만 인간은 낙엽과 같이 흙으로 가고 말 것이다. 한때 없었던 인간이 다시 없어질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인생은 초로와 같다고 하지 않는가. 이사야가 인간은 시들어가는 풀과 같다(40ㆍ6~7)고 할 정도로 우리 생명은 참으로 허무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존귀한 생명을 영원히 보존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 부모 형제와 사이를 끊어 놓고 친척과 친구들과의 관계를 무너뜨리는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 수 없으며 가능한 한 그 죽음을 멀리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죽음을 없이 하려는 사람은 이제 하나도 없을 정도로 숙명적인 것이다. 스멜의 서사시에서 길메시라는 영웅이 죽음을 면하기 위해 하나의 생명의 나무를 발견하지만 거기서 떨어져 물 위로 흘러가다가 한 마리의 뱀에 물려 죽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길메시는 불사신의 신이 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토인비는『요절은 슬픈 일이지만 노인이 된 이의 죽음은 축복해야 할 일이며 저주해야 할 일이 아니다』고 했다. 구약에서도 사람이 살 만큼 살다가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축복이라고 표명하고 있다. 창세기 15장 15절에서는『너는 편안히 네 조상에게로 가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묻히리라』했으며 25장 8절에서는『아브라함은 마지막 숨을 쉬고 호호백발에 실컷 살다가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욥기에서도『자네는 무덤에 이르도록 건강하리니 곡식이 영글어 타작마당에 이름과 같은 것일세』(5장 26절)라고 하면서 죽음을 한 평생의 추수와 같이 이해시키고 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서도 죽음이 무의미한 단절이며 봉행임을 전하고 있으니 잠언에서는『죽음의 함정을 피한다』라고 했으며 (14장 27절) 창세기에서는 주의 계명을 어김으로써 죽음의 빛을 초래했음을 역력히 말해주고 있다.
죽음에 대한 신약의 가르침은 삶의 무의미한 단절에 중점을 두고 있다. 바오로 사상에 의하면 죽음은 죄악의 세력에서 도래한 것이며 인간이 범한 죄의 벌로서 생긴 것이다. 물질로써 창조된 인간이 죽어야 함은 본성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하느님은 유독 인간에게 죽음의 고통이 없이 직접 영생으로 가는 특은을 주셨다.
이와 같은 특은은 인류의 시초에 원조가 죄를 범함으로써 제거되었다. 따라서 죽음은 죄의 탓으로 생겨난 것이다. 죽음이 저주스러운 재난이며 불행인 것은 죄악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행복한 삶을 주실 때 생명의 원천인 당신의 편에 서서 당신을 사랑하고 순명하는 한 그 생명이 변함없이 지탱되도록 안배하시고 실제로 그와 같이 명령하셨던 것이다. 죽지 않는 은혜를 누리고 있던 원조에게 하느님은『언제든지 저 과일을 따 먹을 때는 죽을 것이다』하고 경고하시면서 당신과 함께 있지 않고 당신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불사(不死)의 은혜가 제거될 것을 미리 말씀하셨던 것이다. 신약에서 바오로는 이 점을 역력히 들추고 있으니 로마서 5장 12절에서『한 사람이 죄를 지어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죄는 또한 죽음을 불러들인 것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죽음이 온 인류에게 미치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불사의 은혜가 온 인류에게 내려졌던 것과 같이 원조의 범죄행위로써 원조는 자신뿐이 아니고 인류 가족 전체가 그 은혜를 상실케 하였으며 죽음의 운명에 처하게 하였다.『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는 심판을 받게 마련입니다』(히브 9ㆍ27)
그러나 죄 중의 인류가 끝내 죽음의 절망상태에 처하게 된 것은 아니다. 하느님은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인간이 되시고 직접 죽음을 겪으므로써 보다 더 우원한 생명을 되찾아주셨다.『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라고 믿습니다』(로마서 6ㆍ8) 밀알이 땅 속에서 썩음으로써 백 배의 새로운 열매를 맺듯이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우리의 새 생명이 돋아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인간을 대신하여 죄를 속죄하고 죄로 인하여 잃었던 생명을 되찾아주실 만큼 우리와 세상을 사랑하셨다.『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립 2ㆍ7)『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 안에 생활하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요한 11ㆍ26)
세례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음과 생명에 영적으로 참여한 크리스찬은 불원간 맞이하게 될 죽음이 현재 생활의 끝장만이 아니고 새로운 생명의 본격적인 출발임을 믿으며 매일 같이 희망차게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새 생명을 얻는 과정은 우리의 평상시의 생활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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