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겪어야 하는 모든 일 가운데서 죽음처럼 큰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절대」또는「절대적」이란 말을 쓰지만, 엄격히 따져보면, 이런 표현이 문자 그대로 들어맞는 일이란 죽음의 경우밖엔 없는게 아닌가 싶다. 인간의 모든 고뇌는 그 모두가 죽음에 뿌리를 밖고 있다. 죽음은 예술을 심화시키고 또 종교를 낳게 한다. 수수께끼로 말하더라도 죽음 이상의 것이 없을 것이다.
예수 부활하심의 신비는 말할 것도 없이 그리스도교 원리의 핵심인 동시에 그 완성이기도 하다. 예수 부활하심으로써 이 지상의 질서는 영원으로 연장이 된다. 예수의 부활로 말미암아서 현세의 모든 가치체계는 이를테면 그「천지개벽」을 겪은셈이다.
예수의 부활이 지니는 그 뜻이 큰 그만큼, 예수의 부활에는 많은 예언 및 전조가 있었다. 예언자 요나가 고래의 뱃속에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난것도 예수의 부활을 미리 나타내는 일이었고, 예수께서「예루살렘」의 성전을 사흘만에 다시 세울 수 있다고 하신 말씀도 같은 뜻이었고, 또 수난에 임박해서는 당신의 부활에 대해서 직접적인 언급이 계셨지만, 제자들은 그 뜻을 깨닫지 못했다.
의인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고, 마침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은, 악을 쫓는 무리들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수단의 극한이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난 유대인들은 잠시 마음놓고 잠을 청했을 것이다. 허나 그들의 안도는 너무도 허망하게 끝이나고 말았다.
예수는 다시 살아나셨다. 예수의 부활의 극한이란 한정이 있을 수 없는 하느님은 무한한 지혜와 권능의 나타남이었다. 예수는 부활하심으로써, 악과 싸우는 선과의 승리를거 두셨다. 또한 그것은 악이 다시는 도전을 해 볼 수도 없는 궁국적이고도 영원한 승리였다. 유태인들이 제아무리 바둥거려도 현세를 넘어서서 영원계에 드신 예수의 육신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람의 아들로서의 사업을 다마치신 예수는 육신이 그대로 부활하셨지만, 그러나 부활하신 이후의 예수는 그 이전의 예수와 같지는 않았다. 사도들 앞에 홀연히 나타났다간 홀연히 사라지시곤 했다.
예수의 부활은 불의의 인간들에게는 영원한 절망이다. 의로운 인간에게는 영원한 희망이다. 이젠 결코 어두움이 빛을 이길 수는 없다. 악이 제 아무리 횡포를 부려봐야 그 꼬리가 사흘 넘기지 못할 것이다.
예수의 부활은 또한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커다란 예언이자 상미이다. 인간의 육신이 부활할 것임은 물론 악의 유혹에 빠짐으로써 죽어가는 인간의 영혼이 시시각각 부활해서 영원한 생명에 들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시는 일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이보다 더 큰 희망이란 있을수 없다. 예수의 부활로 말미암아서 우리는 육신의 죽음이 한 종언이 아니라 보다 큰 생명에 드는 또 하나의 시발점이라는 것을 깨달을수가 있을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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