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을까? 철썩이는 동해 바닷가의 자그마한 움집에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었던 그녀, 땔감으로 떨어진 솔잎과 솔방울을 줏어 모으는 그녀에게 난 같이 솔잎을 모아주기도 하고 끝없는 백사장에 발자국을 나란히 남기며 꽤나 재미있는 이야기로 꽃을 피었었는데…
어디 그뿐인가. 고요한 달밤 속에 불을 붙여들고 게를 잡겠다고 구멍 뚫린 모래 구멍을 들여다보며 바닷가를 한없이 올라가던 일, 바람이 심한 어느 오후였다. 바다에 나갔다는 그녀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 난 불길한 마음으로 온 모래사장을 다 헤매어 찾았지만 사나운 파도와 모래더미뿐 그녀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혹시 산에 갔을지 몰라 난 그녀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바닷가 옆 산숲으로 들어갔다. 맞았다. 작은 들꽃들이 탐스럽게 피어있는 들판에 솔방울 바구니를 안고 머리엔 크로바 꽃관을 쓴 채 엎드려 잠든 그녀, 난 쿡 웃음이 터졌지만 마치 동화 속의 공주님처럼 귀엽고 아름다웠다. 흔들어 깨우는 나를 말끄름히 바라보던 그녀, 여기 엎드려 보세요. 저 무서운 바람도 이곳엔 올 수 없어요. 난 그녀의 말대로 두 손으로 턱을 고이고 엎드렸다. 사실이었다. 멀리서 포성이 울리듯 간간히 울려퍼지는 태풍과 파도 소리도 어느 먼 나라에서 들리는 듯 그곳은 한없이 따스하고 아늑하기만 했다.
난 그때 알았다. 작은 들꽃의 평화로움을. 그 꽃은 너무 작아서 무서운 태풍도 사나운 빗줄기도 덮칠 수 없다는 신비를…그러기에 난 이렇듯 들꽃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따스한 자연의 요람 속에 안겨 태풍을 모르고 쉬고 있던 그녀처럼 나도 생활 중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다시 한 번 작은 자 되어 그분의 정원에 이 몸을 맡기며 주님의 폭 넓은 사랑을 새로이 음미해 보는 것이다.
▲ 이난은 주부 여러분을 위한 난입니다. 자녀 교육이나 가정 생활에 관해 유익한 내용이면 어떤 소재라도 좋습니다. 주부 여러분들의 많은 투고를 바랍니다. 매수는 2백자 원고지 5매. 채택된 분에게는 소정의 원고료를 지불합니다. <편집자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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