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11월호「경향잡지」에서 필자가「이 시대의 평신도」라는 제목으로 논설을 썼다. 그 글에서는 주로 평신도의 지위와 사명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점에 대해 강조하였다. 그러던 오늘의 한국 평신도는 하느님의 손과 발이 되어 이 세상에서 영예롭고 성스럽기까지 한 온갖 사명을 실천에 옮기는 면에서 어떠한 상태에 처해 있는지 반성해볼 차례이다.
흔히 평신도는 교회가 현대세계 안에서 무능한 점을 들어 비판한다. 교회 당국이 이러한 비판을 받아야 할 점도 있지만 평신도자들이야말로 커다란 책임을 모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세계의 모든 분야에 직접 참여하는 이들은 평신도이며 교회의 정점인 교종좌에서는 적어도 1891년의「노동헌장」발표 이래로 신자들이 사회에서 실천해야 할 행동 지침들을 교시해 왔다.
「노동헌장」「사회 질서 재건 헌장」「어머니와 교사」「지상의 평화」「제2차 바티깐 공의회 문헌」「민족들의 발전」「일치와 발전」등의 교서에는 세계 최선의 인류 구제책이 담겨 있다.
교회가 평신도의 사도직 활동을 엄격히 규제하는 데에서 여러 가지 좌절이 올 수 있다고도 하지만 역대 교황의 교서들을 실천하고 또 실천하는 운동을 벌인다고 해서 신자들이 파문을 당하거나 성사를 못 받을 리는 없다.
현대세계가 날로 물질주의와 획일주의 풍조에 물들어가고 국제적으로 빈부의 차이가 점점 늘어나고 제3 세계 국민들은 부패한 독재 정권 아래서 인권을 억압 당해도 이러한 현실들을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앞장 서서 개선하려 드는 움직임이 매우 미약하다.
나라마다 민주주의를 실시한다 하여 양당제도도 있으니 어느 정당을 택하는 것은 시민의 참정권에 근거하는 자유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자기가 택한 정당의 시책이 과연 교회가 가르치는 양심의 자유、표현의 자유、공동선의 원리、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공권력(共權力)의 개념에 일치되고 있느냐 하는 데에 있다.
시대마다 유다도 낳고 어용적 인물도 낳아서 한국의 저 일제 때를 예로 든다면 신사참배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유형으로 시속의 불의에 타협하고 자기 한 몸의 편함과 영화를 누리려 든다면 교회와 교황의 교서들이 아무리 훌륭하고 성스러운 내용으로 되어 있다 하더라도 다 헛것이 되고 만다.
평신도、특히 그 중에서도 자기 혼자서만 천당 가려는 차표를 사는 행위라든가 기복의 미신 꼴이 되는 신앙 태도를 지녀서는 안 될 것이다. 영성도 귀중하고 묵상도 기도도 다 귀중하다. 그러나 일찍이 단테가「신곡」에서 말했듯이 사람은 사색과 행동이라는 두 수레바퀴가 있어야 균형을 잡아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여기에서「행동」이라고 한 것은 생활 속의 일상적 행동거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하느님 나라를 완성해 가는 역사를 위해서 의와 진리를 위해서 고난도 피하지 않고 겪어 나아가는 하나의 투쟁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 한국에서도 일찍이 정조 때에 그리스도의 진리를 위해서 고통을 피하지 않고 순교한 평신도 선열들이 많이 있었다. 오늘날 이 70년대에 와서 한국의 평신도 운동 중에는 이 지난날의 순교자들을 성인의 자리에 올리자고 하는 것도 있다. 그 성의야 마땅하고 옳은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분들을 성인의 자리에 올리는 것은 하느님이 벌써 아셔서 선처하셨을 일이며 또「바티깐」당국이 나서서 할일이다.
풍문에 의하면 이른바 시성운동이 국력과 자력을 필요로 한다니 그런 사정으로 성인 만드는 운동이라면 오히려 우리의 순교 선열들에게 죄송한 일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실천ㆍ행동ㆍ순교 이런 일들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므로 누구도 자신이 해낼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성패와 진도는 나중 문제이고 신자들의 노력의 방향은 오늘날 이 세상에서 잘못되어가고 있는 일이 무엇이고 그 잘못과 불행들을 없애기 위해 필요하다면 우리 자신이 실천하는 길로 향해야 하고 그 방향에 따른 구체적인 계획들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옛날 조상들이나 존경하고 칭찬하는 일로써 막상 우리 자신이 해야 할 급박한 일에 대치시키는 결과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회 자체도 대사회적인 감각과 교류와 사무에 있어서는 그 분야에서 사는 평신자들을 동원하여 활용해야 하며 교회가 고정적으로 고용하고 있는 생활과 자질 향상을 보장해 줌으로써 부단히 인재를 기르고 사회 모든 분야에 교회의 능력을 투입할 수 있게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활용할 평신도를 가지고 있지 못한 교회는 이 사회에서 뿌리 뽑힌 교회라고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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