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는 반드시 운문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는 곳곳에 충일한다. 미(美)와 생명이 있는 곳에 시가 있다」이 말은 생명의 말씀을 담은 성서를 보면 더욱 실감이 난다. 특히 예언자들은 시로써 말씀을 전했다. 당시의 사람들은 거의 전부가 문맹이었고 인쇄술도 발달되지 못한 탓일 것이다. 신약성서에서도 곳곳에서 시가 번뜩이고 있고 산문이라 해도 시적인 것이 많다. ▲우선 성모 마리아가 시인임에 틀림없다는 심증을 굳혀주는 대목이 성서의 첫 머리에 나와 있다. 루까복음 1장에서 그것이 잘 나타난다.「내 영혼이 주님을 찬미하며/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마음에/ 이 마음은 설레기만 합니다/…」고 시작되는「마리아의 찬가」가 그것이다. 마리아는 이 찬가에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영원토록 지녀야 할 비젼까지 예시하고 있는 것 같다. ▲마리아가 시인이라면 그리스도는 시 속에서 태어났다고 볼 수 있다. 그뿐 아니라 그분은「시 속에서 살다 시를 읊으며 죽었다」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린 그리스도는『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하느님 내 하느님、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고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이 말은 바로 시편 21의 2절에 있는 구절이 아닌가『시인은 성자이어야 한다』는 토인비의 말은 그리스도를 보고 하는 말 같이도 들린다. ▲그러고 보면、그리스도의 수난도 그리스도가 시인이었다는 점과 전혀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문화와 종교의 파수꾼에 비유되는 시인은 민족의 운명과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있다. 난세를 만나、예언직을 수행하다가 희생되는 문학인은 거의 전부가 시인이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오늘날 제3 세계의 현실이 응변해 준다. ▲현대인은 가공할 과학 문명을 이용한 대중 조작의 마술에 걸려 있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이가 역사의 오밤중을 헤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현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시인의 입을 통해 희미하게 전달되기도 한다. 시인은 외로이 새벽을 깨우려 몸부림치는 것이다. 마치 그리스도가 그러했듯이…최근에 밝혀진、독립운동가 윤동주 시인이 옥사한 것도 이 같은 몸부림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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