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에 나는 청계천 상가의 어느 점포에서 상당한 값을 주고 전축 바늘을 하나 산 적이 있다. 집에 와서 확대경으로 검사를 해보니 바늘 끝이 달을 대로 달아서 마치 여자들이 입술에 칠하는 립스틱 끝 모양으로 돼있었다. 화가 났던 것은 어디갔던지 간에 한번 혼을 내줄 양으로 확대경까지 가지고 도로 그 상인한테로 달려갔다. 상인은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내가 했던것과 같이 바늘 끝을 검사하면서『아니 원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이걸 보십시오. 끝이 얼마나 뾰족합니까 이것이 신품이 아니라면 어디 신품이 있겠습니까』하는 것이었다. 나는 마치 도깨비에 홀린 기분으로 다시 한번 바늘끝을 살펴봤다. 바늘 끝은 역시 제 수명을 다한 립스틱 끝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번 권력을 손아귀에 쥔 지배자가 권력의 물리적인 힘을 배경으로 해서 마치 이상인과 같은 억지를 쓴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일제 이후 인권력은 곧 진리로 통용되는 정치적인 도식을 너무나 많이 경험해왔다. 만인이 다 아는 이를테면 흰색을 검정이라고 일갈해버린다.
그러면 투덜대는 소리는 차츰 희미해지고 흰색이 검정색으로 행세를 하게되는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했다.
참으로 엄청난 사건이다. 이 사건의 진상에 대한 결론은 오스왈드의 단독범이라는 것으로 낙착이 됐다. 아직까지는 그저 그렇게 돼있을 것이다. 허나 이것도 명목상의 진상에 불과하리라는 느낌은 아마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닐것이다. 소위 서구식 기계문명의 최첨단을 가고 있고 언론의 자유가 최대한으로 보장돼있다는 미국의 사회에서도 정작 파헤쳐야 할 문제에 대해선 이모양이다.
인류는 소위 역사라는 것을 가져왔다 가져왔다기 보다는 차라리 발명해낸 것인지도 모른다. 허나 기록으로 전해지는 사료라든가 또는「사실」이라는 것이 과연 어느정도의 진실을 담고있는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아마 표면에 노출된 역사란 그 진실성으로 말할진대 빙산의 일각이 아닌가 모르겠다. 빛을 보지 못하고 억울하게 묻혀간 의인의 역사의 심연이 얼마나 많았을것인가. 이런점, 인류의 역사란 한 거대한 원성과 같다는 말엔 일리가 있다.
역사란 다름아닌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의 투쟁이다. 여기에서 한가지 아이러니컬하게 느껴지는것은 어떠한 폭군도 역사를 운위할때는 반드시 정의를 가장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아마 폭군의 대명사처럼 돼있는 네로의 경우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폭군도「천도」를 두려워하는 시늉은 해야 하는것일까?
어느시대 어느사회를 막론하고 의인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오기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일것이다. 의인의 수가 한 열만 넘어도 그 사회는 구원을 받을는지 모른다. 허나 의인이 적다는 것보다도 더욱 무서운 일은 의인의 소리를 민중이 외면을 하는 경우일 것이다. 그런 사회는「덕」이 손톱끝만큼도 없는 사회이니 암담하다고 하는말이 외엔 그 사회의 점패가 있을리 없다.
반면에「영원」이란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볼줄도 아는 사회는 반드시 구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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