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1백여 년 간에 걸친 박해를 통해서 대략 1만여 명의 신앙인들이 순교를 했다. 이 1만여 명에 이르는 순교자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확고히 고백한 인물들이었다. 그러므로 신도들은 이들 순교자에 대한 각별한 존경심을 일찍부터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교회사를 보면, 박해가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서도 순교자에 대한 조사와 그들의 시복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음이 주목된다. 박해시대의 신도들은 순교자의 업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신앙을 다지고, 하느님을 증거 해야 할 자신의 책임을 새롭게 확인했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우리는 오늘날 1백 3명의 순교성인을 모시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는 복자와 성인으로 선포될 수 있는 많은 순교자를 가지고 있다. 한국 성인이 탄생되기 이전에는 이들의 시복을 위한 노력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구천주교회 2백주년 행사가 종료된 이후 이 시복을 위한 노력은 매우 저조한 상황에 놓여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교자 성월을 맞이하여 한국순교자에 대한 시복운동이 새롭게 전개되기를 다시금 촉구하고자 한다. 순교자의 시복운동은 우선 각 교구를 중심으로 하여 추진되어야 한다. 각 교구에서는 자신의 교구가 자리 잡고 있는 지역에서 순교한 신앙인들을 찾아 밝혀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각 교구에서는 시복을 위한 교회법적 절차를 밟기에 앞서 순교자의 삶과 그들의 정신을 신도들에게 충분히 주지시켜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교구단위의 시복운동을 구체화시키기 위해서는 이 문제에 관한 주교단의 각별한 관심이 요청된다. 주교단은 시복대상자에 대한 최종심의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시복운동의 추진 자체에 있어서 큰 몫을 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각종의 신도단체들도 시복을 위한 노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한다. 또한 교회사에 관한 전문적 연구를 진행시키고 있는 기관들에서도 이 시복운동을 지원할 수 있는 본격적 체제를 갖추어 나가야할 것이다.
시복운동은 순교자에 대한 신심을 강화하여 신도들에 현대의 증거자로 만드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시복운동의 전개과정에서는 순교자의 죽음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파악하여야 하고 순교에 이르는 그 삶의 과정을 주목해야한다. 이로써 신도들은 순교자의 삶을 본받아 증거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시복운동은 우리의 토양과 한국인의 심성에 알맞는 영성(靈性)을 개발하는 데에 또 다른 목적을 두고 있다. 순교자들은 서양의 철학이나 신학에 매료되어 순교했다기보다는 자신의 문화풍토위에서 하느님을 인식했고 하느님을 찬미하여 죽어갔던 존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우리의 영성을 재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교회에 새로운 활력을 줄 수 있는 시복운동이 새롭게 전개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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