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에서 나서 서울에서 살아온 순 서울뜨기다. 말하자면 서울은 나의 출생지요 살아온 고장이다. 서울이라면 어느 동리 어느 골목 치고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
무슨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지만 나는 나의 나름대로-
『서울뜨기』라는 자부심도 대단하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날로 발전돼가는 서울거리보다는 아직도 옛날 그대로 남아있는 으쓱한 뒷골목을 찾아서 배회하기가 일쑤이다.
그때 그 시절, 죽어도 같이 죽자 맹세하던 그 여인이 살던 뒷골목집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어 혼자, 그리고 혼자 눈물 짓기가 일쑤이다. 더우기 권농동 (鐘路區 勵農洞) 뒷골목에 지금도 누구가 사는지 아랑곳없이 대문 앞에서, 한참씩 추회 (追懷) 의 눈물을 흘리기가 일쑤이다. 젊었을 때 저지른 무모한 행동이란 일편 부끄럽기도 하지만 무한 그리운 것-. 누구나 다 그럴 것이겠지만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이미 세상을 떠났는지 소식조차 모르게 된 그 사람을 생각하는 나의 마음은 아프고 쓰리다.
불러야 대답 없는 이름이여.
하이네의 시(詩)는 내가 항상 혼자 읊는 제목이지만 늙으면 늙을수록 추억의 실마리는 길어만 가고 흐르나니 눈물뿐이니 누구나 늙으면 다 그럴 것이겠지만 유독 나만이 당하는 슬픔 같아서 질색이다.
식구들은 다 자기 침실에서 잠들고 나 혼자 오드만히 앉아서 원고지를 메꾸느라면 오싹 외로운 생각이 들고 붓을 놓고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들… 진정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서울은 짝지어 손목 잡고 거니는 골목도 많지만 창덕궁 앞 동쪽 뒷골목(勤農洞) 지금도 틈이 나면 어느듯 발걸음은 뒷골목 막다른 집. 그 집 문전에 멈추게 되니 진정 어쩔 수 없는 팔자(運命)인 성싶다.
현철한 아내에게는 지극히 미안하지만 가슴이 뭉클해지니 딱한 노릇이다.
서울은 넓기도 하지만 으쓱한 뒷골목이 많아서 애인과 손목 잡고 밤새껏 헤어질 줄 모르고 방황하던 일 지금 와서 울면 무엇하랴. 오로지 하염없이 추모의 눈물만 흘릴 뿐 그때 그 사람은, 지금 어느 곳에서 살고 있는지 물어볼 길도 없는 이제 와서 울면 무엇하며 소리 친들 대답을 듣지 못하겠지만 20대에 맺어진 사연은 죽는 날까지 잊혀지지 않으리니 딱한 노릇이다.
현철한 아내와 이남 삼녀의 효성에 젖어서 아무 걱정 없이 지내지만 비 나리는 밥. 눈 쌓인 아침. 꽃이 피나 잎이 지나 때를 따라서 가슴을 여미는 회상은 항상 나를 울리지만 지금 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전설에「막」이라는 동물은「꿈」(夢)을 먹고 산다지만 사람은 누구나 70이 넘으면 지내온 세월 울고 웃던 추억에 젖어서 살겠지만 밤새껏 울어본들 없는 것은 없으니 딱한 노릇이다.
그러나 나는 하필이면 글은 꼭 밤도 깊어서 쓰는 버릇이 있어서 혼자 외로이 원고지를 메꾸느라면 어느 틈에 지나간 날 가까이 지내던 무수한 일들이 눈시울을 뜨겁게 해준다. 그러나 한바탕 눈물을 흘리고 나면 마음도 가라앉고 현실에 되돌아들어 그런 대로 하룻밤을 지새게 된다.
지내온 세월을 더듬어 생각하는 것은 노인이나 겪는 일이지만 나는 그런 때는 벽에 모신 성모(聖母)님 앞에 무릎 끓고 고개를 숙인다.
묵주알을 하나 둘 헤이다 보면 머리는 맑아지고 가슴도 후련해진다. 이 얼마나 흐뭇하고 영광스러운 일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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