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말로부터 4월초에 걸쳐서 서울 영동포구 구로 공업단지와 문래동에 있는 2개의 가발동장에서 가톨릭 신자 여공 17명이 강제로 해고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통상 주식회사 산하 두 공장의 관리자들은 이 여공들을 해고시킨 이유로서『가톨릭 신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 위험성이 있다』고 공언하였다.
이 언어도단의 부당한 처사가 교회 측으로부터의 강력한 항의에 부딪치자 회사 측은 4월 10일까지 복직시키겠다고 약속은 했으나 복직은 순조롭게 이행되지 않고있다.
그뿐만 아니라 서울 남대문경찰서 정보과는 이 문제의 공장지대에서 이른바 반공교육 시간을 마련해 가지고 역시 공공연히 가톨릭 교회를 비방했다. 그 경찰관은 말하기를『천주교 교리는 공산당에서 흘러나왔다』『산업선교는 간첩활동과 같으며 노동조건 개선을 주장하는 자는 간첩』운운했다는 것이다.
상식의 수준에서 보더라도 논리의 앞뒤와 옳고 그름을 분간 못하는 이런 무식의 폭언은 상대하여 따지기조차 부끄러운 감이 든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톨릭교회가 사회 정의운동을 추진하느라고 어려움을 겪고있는 실정과 연관하여 생각하면 이번에 신자 여공들이 불법해고를 당한 사태 역시 중요하지 않을수 없다. 이것은 최근에 가톨릭교회가 권력기관에 의해 비방이나 압력을 받아온 사태의 연속으로서 이제는 그 작용이 신자들의 시민적 생존을위한 근로작업장에까지 미치게 된 사실을 증언해 주는것이다.
71년 11월에 한국 가톨릭 주교단이 「오늘의 부조리를 극복하자」는 제목의 공동교서를 발표했을 때에도 그안에 『노동조합 운동을 정상적으로 전개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어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있었다.
원래 가톨릭교회는 노동문제에 대해 전통적으로 깊은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 관심이 본격화된 것은 벌써 1891년에 레오 13세 교황이 발표한 노동헌장「레룸 노바룸」에서 부터였다. 레오 13세는『노동자들도 상통재산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천명했는데 이 주장은 삐오 11세에 의해 거듭 주장되면서『그렇게 되지않으면 사회주의자들의 혁명적 폭력에 맞춰 사회의 평화를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까지 논급되었다.
삐오 12세 교황도『국가와 국민의 지도자들이 헌신적으로 노력해야 할 목표는 계급의 조성과 거기에 따르는 투쟁을 종식시켜야 한다. 정의가 국민의 생활 전체에 침투되어야 한다』고 교서를 통해 밝힌 일이 있다.
또한 제2차「바티깐」공의회의 결정사항은 어떠한가. 『노동자들을 진실로 대표하며 경제생활의 올바른 질서를 수립하는데에 이바지할 수 있는 노동조합을 자유로이 조직할 권리와 아무런 보복의 위험없이 조합활동에 참여할 권리는 기본인권에 속하는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뚜렷이 밝혀져 있다(사목헌장). 심지어 공의회는 노동자들의 파업은『최후의 필요하고 정당한 수단이 될수있다』고 까지 가르쳐 주고있다.
가톨릭교회의 이와 같은 전통적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의 노동현실 더욱이 이번의 여공 해고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할것인가.
노동자들에게 상통재산이 생길만큼의 부의 균배는 하늘의 별처럼 까마득히 올려다 보일뿐 아니라 최소한의 생계비에도 모자라는 월급을 받는 노동자들이 그나마 직장에서 쫒겨날까봐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국법과 교회법이 엄연히 인정하고 있는 노동조합의 결성이 금지당하기 일쑤이며 심지어 가톨릭 신자들은 노조를 결성할 위험이 있다고 불법 해고를 시키고, 남아있는 신자 여공들에게도『성당을 택하든지 회사를 택하든지 양자택일을 하라』고 협박하는 사태가 구로공단에서 벌어지고 있다.
또한 경찰은 가톨릭 교리를 마치 공산주의시하는 망언을 하고있다.
그러나 진실대로 말하자면 가톨릭교회가 주장하고 가르치는대로 되지않으면 오히려 이 사회가 공산주의에 의해 패배당할 위험을 다분히 안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이제부터 교회는 노동자들의 사회적 기리문제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고 문제의 해결과 선도를 위해 현장에 참여하는 자세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가톨릭 노동청년회」와「가톨릭 농민회」를 적극 뒷받침해야하며 또한 국책적 차원에서 부조리의 시정을 위해 시급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서 우리의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의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마음의 문을 닫고 그를 동정하지 않는다면 그에게 어떻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우리는 말로나 혀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Ⅰ요한3ㆍ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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