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참으로 많은 옛날 이야기들을 알고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엄마의 할머니가 엄마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이라고 했다.
내가 그많은 옛날 이야기들을 듣기 시작한건 일사후퇴때 전의로 피난을 내려가 있을 때였다.
아버지는 우리를 거기 떨구어놓고 혼자 부산으로 내려가 버렸다. 우리는 먹을것도 변변히 가지지 못한채 어떤 집 문간방 하나를 빌려들어 있었다.
그 해 겨울은 몹시 추웠고 눈이 많이 내렸으며 밤엔 지독히나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세 동생들이 모조리 홍역에 걸려 앓고 있었다. 그 해 겨울 그 동리엔 홍역이 돌아서 피난온 사람들이 홍역으로 죽은 아이들을 뒷산에 묻고 또 다시 더 남쪽으로 피난길을 떠나고 있었다.
엄마에겐 참으로 견딜 수 없는 나날이었을 것이었다. 올망졸망한 애들 넷을 데리고 하루하루 먹을 것을 걱정하면서 우리는 거기서 겨울을 견디고있었다.
멍석 위에 앓는 아이들을 눕히고 양말로 틀어막은 문구멍에서 솨아솨아 밀려드는 겨울 한파에 떨면서 엄마는 또 한편으로 아버지의 신변을 걱정했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노상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나는 아홉살이었고 엄마에겐 제일 큰 자식이었다. 내가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르면 엄마는 야단치지 않고 순순히 옛날이야기 보따리를 끌러놓곤했다. 그런 지경에 계신 엄마의 마음이 오죽 심란했을까만은 엄마는 마다않고 내 청에 순순히 응하시곤 했다.
어쩌면 그렇게라도 해서 엄마는 잠시나마 모든 시름을 놓고 싶으셨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 많은 옛날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중에도 제일 나를 매료시켰던 것은「도깨비 방망이」이야기였다.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그렇게 하기만 하면 금과 은이 마구 쏟아진다는 도깨비 방망이. 얼마나 좋은것인가.
그 얘기를 듣고나서 나는 늘 그 도깨비 방망이의 환상에 젖어 살았다.
아, 나도 그 도깨비 방망이만 얻을수 있다면 쌀밥도 나오라 하고 장작도 나오라고 하고 약도 나오라고 하고 이쁜 옷이며 책도 나오라고 할수 있을텐데-그 당시 우리식구를 괴롭히던 모든 궁색함과 어려움을 다 해결해 줄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에 대한 갈망과 동경과 공상으로 나는 때때로 가슴을 태우곤 했다.
차츰 나이가 들고 머리가 깨여가면서 나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여전히 그런식의 꿈과 공상을 버리지 못했다.
내게 뜻밖의 행운을주소서. 내게 큰 돈을 잡을수 있는 기회를 주소서. 내게 왕자님 같은 신랑감을 주소서- 그런 따위의 기도가 노상 계속되곤 했다. 허나 이제 나이가 삼십이 넘고 두 아이를 거느린 어머니의 입장에서서 인생이란 것에 얼마큼 깊이 부딪치자 그런 나의 치졸한 기도도 한결 줄어들었다.
우리의 성실과 노력의 부피와 질만큼밖에 우리는 보답받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이젠 차자분히 나의 심층에 용해되어 납득되어가고 있다. 그리스도가 주고 가신다고 말씀하셨던 그「평화」라는 것도 사실은 그냥 주고 가신 평화가 아니라 그의 희생과 인내와 고통을 본받아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가져야 하는 땀의 결정체와 같은 평화라는 것도 대강 알게되었다.
도깨비 방망이의 이야기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허나 요행과 기적을 바라는 그 마음씨가 바로 도깨비 방망이를 믿고있는 어리석음이며 우리는 저마다 그런 어리석음에서 깨어나야 할것이다.
▲지금까지 성찬경씨께서 수고해 주셨습니다. 이번호부터는 박계향씨가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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