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사는 동리엔 구멍가게라는게 없다.
하다 못해 껌하나를 사달라고 아이가 졸라도 저아래 큰길께까지 나가야 한다.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허지만 이곳엔 구멍가게가 앉을만한 자리가 없다.
차려놓아 봐야 잘되지가 않을성 싶기도 하다.
동리는 꽤 넓지만 굵직굵직한 집들이 대부분이어서 사실 사람수로 따지자면 얼마 되지도 않고 게다가 잘사는 사람들이란 구멍가게를 이용할 필요가 별로 없는 법이기도 하다.
그들은 크레카봉지 하나를 사도 백화점에 가서 사와야 직성이 풀리는 습관에 물들어가고 있으니까.
허나 나 같은 사람이 이런 동리에 산다는건 실로 성가스런 일이다,.
자가용을 타고 후딱 나가서 한꺼번에 많은 것을 사와서 저장할 입장도 못되고 또 실상 그렇게 백화점까지 가서 사와야 할 물건이 내게 있는 것도 아니다.
콩나물 두부 따위가 고작 식찬거리요 사탕봉다리나 빵따위가 아이들에게 필요할 뿐인데 그걸 사자고 시내까지 나간다는 것도 우습고 큰데 가면 그런건 살수도 없다.
한마디로 나는 이런 동리에 살만한 수준이 못되는데 어찌어찌하다가 멋모르고 이사를 와선 고생중이다.
우선 내가 살고있는 집 규모가 제일 작고 우스운데다 모두들 나보다 잘난분들 같애뵈서 감히 누구 엄마 아무개 언니 부르며 친해질 수도 없고 또 노상 높은대문을 굳게 닫아걸고 사는 그들 집안에 어줍잖게 침범해 들어갈 수도 없다.
그러자니 참 외롭고 적적하고 어느땐 무서운 생각마저 든다.
저번엔 아이를 데리고 큰길께로 껌을 사주러 나간 일이있다.
대개는 식모언니를 따라 보내는게 보통인데 마침 날씨도 화창하고 해서 내가 아이를 데리고 나섰다.
아이에게 껌 한통과 손오공인가 하는 봉다리과자를 한 봉 사서 쥐어가지고 마악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어떤 남자 하나가 눈에 띠었다.
얇은 회색 잠바차림의 젊은 남자인데 남의 집 축대를 향해 소변을 보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 시선을 피하고 급히 그곳을 지나치려 아이의 손목을 끌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갑자기 내게 몸을 돌리며 차마 여기 옮겨쓸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부끄럽다는 생각보다 무서움증이 왈칵 내 머리끝을 세웠다.
미친 사람이다-나는 놀라서 아이를 잡아끌며 도망치려 했다.
허지만 네살백이 사내놈은 엄마가 지금 어떤 위험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발길을 질질끌며 나처럼 뛰려하질 않는다. 그렇다고 아이를 놓아버릴 수도 없어 나는 정말 무시무시한 순간을 견디며 걸음을 재촉했다. 다행히 아무일은 없었지만 참으로 무서운 순간이었다. 왜 그렇게나 나는 무서웠을까. 사방이 집들로 둘러쌓인 그 환한 골목길이 왜 내겐 캄캄한 밤의 들판보다도 외져보였을까. 그 미친남자가 나를 쓰러트리고 어떤 무서운 짓을 한대도 사람들은 그저 창문을 열고 어마, 어마, 구경하며 소리는 지를 것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나와서 나를 구해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분명히 알고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 외롭게들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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