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노트 신부는 끝내 출국하고 말았다. 4월 30일까지 출국하라는 법무부의 명령에 따라 시노트 신부는 30일 오후 7시 동료신부들의 정겨운 배웅을 받으며 조용히 떠났다. 주교회의 상임위원회와 선교ㆍ수도회 대표들이 한발 앞서 법무당국에 요청한 체류연장 불허조치 재고와 출국령 취소요청은 예상대로 묵살됐다.
주지하는 바와같이 시노트 신부는 미국「뉴욕」출신이며 메리놀회 소속으로 사제서품을 받은 즉시 낯선 한국 땅에와서 14년8개월간 청춘을 바쳐가며 복음정신으로 봉사해온 선교사다. 이러한 선교사가 그 이유와 경위야 어떻든, 자의에 반하는 출국령에 의해 강제추방된데 대해 한마디로 우리는 형용할 수 없는 충격과 슬픔을 금할수 없다.
천주교 박해가 그 절정에 달했던 대원군 시대가 막을내린 뒤에도 미델 주교와 드게뜨 신부가 추방된 일이 있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가톨릭 선교사를 강제 출국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왜정때의 교회탄압과 공산치하의 피맺힌 수난을 겪어야 했던 천주교회가 비상한 관심과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법무부가 밝힌 시노트 신부의 입국목적 위반사례에 의하면, 시노트 신부는 인천과 서울에서 동료신부들과 함께『유신헌법 철폐하라』『구속자 석방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벌이는 등「정치활동」을 했고, 『인혁당은 조작어다. 공개재판 하라』는 등 구호를 외쳐 반국가 단체를 고무 찬양했으며, 폭언으로 법정을 모독했고 경찰의 공무집행을 방해했다고 되어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시노트 신부가 법무당국이 주장하는 위반사례를 익히 알고 있었으며, 결국 체류연장 허가를 받지못하고 강제추방당하리라는 것을 알고 었었음이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시노트 신부는 작년 11월 16일과 29일, 금년 4월 11일 등 세 차례에 걸쳐 법무부 출입국 관리국으로부터 경고를 받은바 있고, 금년 1월16일에는「아직 추방되지 않는 시노트 신부」라는 글귀로 동아일보에 격려광고를 낸 것으로도 이를 충분히 짐작할수 있다.
작년 4월 3일 긴급조치 4호가 발동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서해의 백령도와 영종도 등지에서 성당을 짓고 병원을 세우고 고아원과 양로원을 설립하고 어선을 건조하고 선착장을 축조하고 도로를 확장하는 등 가난한 섬사람들의 복지를 위한 봉사활동에 전념해왔다. 그러던 그가 추방당할 것을 각오하고 정부의 비위에 거슬리는 이른바「정치활동」을 계속한 것은 그의 말대로『이 나라를 악에서 먼저 구해야겠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최근 1년동안 벌인 시노트 신부의 활동에 대해 신부로서는 좀 지나치다는 평이 없지 않지만 진보적인 복음정신으로 볼 때 그의 행동은 역시 섬에서 벌여오던 봉사활동의 연장이었으며 사도로서 복음에 충실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특히 조직적인 구조악에 저항하기 위해 자기희생을 무릅쓴 그의 그리스도적 정의감에 경의를 표하는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정치불재속에서 소일하는 정객들이볼때는 시노트 신부의 활동이「정치활동」으로 여겨질여지가 없지는 않다.
그렇다고 지금 이시점에서 정치적 욕망없이 인권운동을 해온 선교사를 추방하는 것은 가뜩이나 악화일로에 있는 세계의 대한 여론에 또 하나의 큰 타격이 될 것이 틀림없다. 더욱이 미국 의회의 한국에 대한 청문회가 며칠앞으로 다가온 이때 그 영향은 예상외로 크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 같은 처사는 당국의 손익계산 장치에 어딘가 크게 고장이 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글 목사의 경우로 보아 별 것 아니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월남과 크메르가 미국의 여론에 의해, 그 여론을 대변하는 의회에 의해 멸망을 재촉하게 된 사례는 여론자극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따라서 시노트 신부의 추방은 교회를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나 정부를 위해서나 이롭지 않음이 명백하다. 때문에 선교사에 대한 추방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야 하며 이러한 비극을 예방하기 위해 화해의 정신을 살려 교회와 정부가 대화를 통해 근본적인 해결을 모색할 것을 기원하며 당부해 마지 않는다. 특히 정부당국은 우격다짐이나 억지가 아닌 진정한 국민총화를 위해 정권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국가의 차원에서 대화의 길을 터는데 대범하고 솔선하는 입장을 취해야 할 줄로 믿는다.
한편 한국 메리놀 외방전교회에 대해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며 이번 사건으로 지나치게 의기소침해 하지말고 한국교회와 국민을 믿고 배전의 용기와 그리스도적 사랑으로 선교활동에 한층 더 적극적으로 임해줄 것을 부탁하는 바이다. 언젠가 시노트 신부가 재입국 허가를 받아 그의 뜻과 희망대로 선교활동을 재개할 날이 올 것을 우리는 기대하며 또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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