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영아한테서 편지가 왔다. 그녀는 이번 5월 5일날 영세를 하게 된단다. 그리고 이제는 옛날처럼 슬퍼하는 아이, 엄마가 그리워 우는 아이가 아니고 성모님과도 같이 또 엄마의 얼굴처럼 미소담은 아름다운 여인이 되고싶다고 했다. 하긴 벌써 중학생이 되었다니 아무튼 기특하기만 하다.
영양실조와 심장이 약해서 항상 파리하던 영아가 그러니까 벌써 4년전 어머니날이었다. 영아는 돼기저금통을 헐어서 샀다며 카네이숀 꽃을 한아름 안고 왔다. 난 그 꽃을 받기가 너무 부당했지만 받지 않으면 곧 울기라도 할듯 침울한 그녀의 표정에 얼른 그 꽃을 받아 안았다. 수없이 많은 환자중 영아도 한 사람이었지만, 난 자주 그녀의 큰 눈길을 의식했으며 그때마다 말없이 미소를 지어주곤 했었다. 육신의 아픔보다도, 무언가 간절히 기다리는 그녀의 눈길이, 너무 애절했기 때문이다. 부모없이 중풍걸린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있는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주위의 따뜻한 사랑이었으리라. 그녀는 말했다. 내가 꼭 자기엄마를 닮았다고 … 난 가슴이 뭉클했었다. 오죽이나 엄마가 그리웠으면 아무것도 아닌 나의 얼굴에서 엄마를 발견하려고 했을까?
난 그날 그녀를 데리고 성당엘 갔다. 참다운 어머니를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침 성모상 앞에는 많은 교우들이 묵주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난 제의방 수녀님께 꽃병을 얻어 영아가 가지고 온 꽃을 성모님께 드리고 그녀를 위해 진심으로 빌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영아는 이사갔고 소식을 몰랐었다. 그런데 오늘 소식이 왔다. 그녀가 나를 이제껏 기억케 한 것은 나의 다정한 미소때문이란다.
난 생각에 잠겼다. 감수성이 가장 예민하고 한창 자라나는 꽃송이들에게 우리의 언어 행동 표정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걸까? 그들을 아름답고 싱싱하게 꽃피워주는 태양과 비도 될 수 있고 연약한 꽃을 짖누르는 비바람도 될 수 있으리라. 난 5월 중순 이곳을 떠나 서울 고아원에서 일하게된다.
오늘 영아에게 받은 교훈을 벗삼아 다정한 그들의 어머니가 되어 보리라고 마음속 계획을 세워보면서 영아에게 답장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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