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시작되면서 구세주를 영접하려는 준비를 본격적으로 서두르게 되었다. 멀지 않아 전후방을 가릴 것 없이 하얀 눈이 축복처럼 내려 이 같은 대림절 분위기를 한결 복돋우기도 하리라.
이맘때면 사회 각계각층과 동교 단체들은 불우이웃돕기운동을 벌여 잠자던 사랑의 정신을 자극하고 자선심을 새삼 일깨워주기 마련이다.
우리 교회에서도 이미 군종신부들과 교도소후원회 관계자들이 국군 장병들과 재소자들을 위한 성탄절 위문금품 모집에 나서서 일선 본당 신부들과 교회 기관을 순방,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이에 발 맞춰 서울교구 총대리 경갑룡 주교는 교구 소속 신부들에게 공문을 보내 군종신부들과 교도소후원회 회원들에게 따뜻한 선물 보따리를 마련해줄 것을 당부했고 다른 주교들 역시 이 같은 자선 행위를 적극 지원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런 위문금품 모집이 있을 때마다 느껴지는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자선 행위가 매년 부활절을 앞둔 사순절과 성탄절을 앞둔 대림절에 잠깐 동안 전개될 뿐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요즘은 전국 인성회(仁成會)가 있어,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구호사업을 벌이고 있으나 이 역시 인식 부족과 협조 부족으로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아직 거리가 먼 형편이다.
교회 신문으로서 지금까지 이 같은 자선 행위를 측면 지원해왔고 선도하기도 한 가톨릭시보는 특히 이번 성탄절을 기해서는 이 방면에 가일층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을 재다짐함과 동시에,「국군 장병에게 가톨릭시보 보내기 운동」을 벌일 방침을 세웠다. 이미 사고를 통해 발표된 바와 같이, 이 운동은 국군 장병에게 1년간 계속해서 교회 신문을 배달케 함으로써 자선 행위를 1년 내내 지속시킬 것이다.
우리나라의 장정 대부분이 이미 경험했고 또 누구나 짐작하다시피 군대 생활의 특수 생리는 깊은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도 신앙을 상실할 기회가 많게 한다. 거기다가 교회 소식이나 신앙생활에 관한 정보마저 없다면 그런 기회는 더욱 자심해질 것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볼 때 장병들이 매주 잠깐 동안에 읽을 수 있는 교회 신문을 총해 후방교회와 형제적 유대를 유지하고 대화를 지속할 수 있다면 그런 불행은 훨씬 줄어들 것임에 틀림없다. 교회 신문을 정기적으로 접함으로써 장병들의 신심은 그만큼 깊어질 것이고 군 사목(軍司牧)과 전교에도 큰 도움을 주어 결과적으로 국군 장병의 정신 전력 강화라는 대국적인 결실로 맺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 국군에는 군종신부 50명이 군목(軍牧) 군승(軍僧)과 함께 전군 신자화 운동을 주도하고 있으나 군종신부의 수는 군목 수에 비해 6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다 군부대에서 군종신부의 말씀을 대역(代役)할 교회 출판물의 보급률은 개신교 측에 비하면 아예 상대가 되지 않는다. 삐라처럼 뿌려지는 개신교 신문(5개지)들과 각종 서적이 소대(小對)에까지 보급되는 데 비해, 가톨릭 측은 귀가 닳아 떨어진 기도서 몇 권이 전부인 경우가 많다는 현실은 참담할 정도라고 한다.
사단장도 빈손으로 못 간다는 전방, 그 전방의 장병들에게 신부가 가톨릭시보 한 뭉치도 갖지 않고 어떻게 빈손으로 찾아갑니까? 군종신부로부터 이 같은 하소연을 듣는 교회를 어찌 형제적 공동체라 할 수 있겠는가. 이번 대림절 동안 우리 교회는 이웃에 대해 사랑이 부족했던 점 왜소하고 인색했던 점을 반성해야겠다. 이 세상의 모든 재물은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속해 있고 하느님의 자녀들은 모두 그 재물의 혜택을 골고루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는 신자라면 자선의 대열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 자선의 대열에 참여하되 정신적 기쁨뿐 아니라 재물로 말미암아 누리는 기쁨도 이웃과 함께 나누겠다. 불우한 사람이나 수고수난하는 사람을 동정하기는 쉽다.
그러나 불우함과 수고수난에 정신적으로라도 동참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단순한 기쁨마저 나누기도 쉬운 일이냐 하면, 그것 역시 쉽지 않다. 눈물을 흘리는 것(동정)보다, 남의 기쁨을 함께 기뻐해 주는 것(기쁨을 나누는 것)이 더 어려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참하고 나누는 크리스찬의 이상(理想) 추구가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것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크리스찬의 숙명이다.
독점적인 소유욕을 떨쳐버리고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라는 일종의 무소유(無所有)의 상태를 지향하여 끊임없이 돌진할 수밖에 없는 것이 크리스찬의 길이다. 이 길은 희생을 요구하는 좁고 험한 길이긴 하나 우리 앞에 당장 열려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 대림절에 군 사목과 교도소 사목에 동참하는 길이요 불우 이웃과 함께 가는 길이며, 기쁨을 나누는 길이다. 이 길은 바로 불우한 이, 수고수난하는 이의 모습으로 오시는 구세주를 영접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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