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存」11월호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사실 먹고 먹히고 하는 것이 자연이며 세계요 또한 역사가 아닌가. 먹어야 살 수 있도록 된 것이 철칙이라면 인간 또한 먹힐 것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의 삶이야말로 바로 그러한 현장이다. 생존경쟁, 약육강식의 현실이 자연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세계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그 역사를 이루고 있다.」
▲「한 정권이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명을 먹어버렸으며, 한 국가가 군림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민족을 먹어버렸고, 극소수의 일부 계층이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간(노동력)을 잡아먹었는가? 이 같은 현장에서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역사란 바로 먹으려는 힘과 안 먹히려는 저항이 충돌하는 과정이 아닌가. 그러나 결국 먹고 먹히는 과정에서 인간의 생존은 이어져 온다」
▲역사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이, 최근 홍수환 선수와 카라스키야 선수의 힘의 치열한 싸움을 실감할 수 있었다. 홍 선수가 사전오기(四顚五起)한 것도 먹히지 않으려면 먼저 상대를 먹어야 한다는 생존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홍 선수는 결국「챔피언을 먹었고」다시 『대한민국 만만세』를 부를 수 있었다.
▲그러나 홍 선수도 언젠가 먹혀야 한다. 그것이 챔피언의 운명이기도 하다. 「챔피언」을 먹으려면 언제나「챔피언」을 깨뜨려야 먹을 수 있다. 깨뜨려지지 않는「챔피언」은「챔피언」이 아닌 것이다. 여기서 깨뜨려서 먹는다는 것은 죽여서 먹는다는 뜻이겠다. 즉 챔피언은 영원한 생명이 없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이 없기에 깨뜨려질 수밖에 없고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수님의 살과 피는 그렇지가 않다. 예수님이 인간을 위해 내놓지만 죽여서 먹을 수가 없다. 예수님을「십자가형에 처한 것은 역사가 그를 죽여 삼켜 버렸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그를 가둔 무덤이 열리고 그가 부활했다고 한다. 이것은 역사(인간)가 그를 죽여 삼켰으나 그대로 소화할 수 없어 모두 토해 버렸다는 말이 된다」예수님이 흘린 피와 살을 상징하는 포도주와 빵을 먹는 것은 예수님을 산 채로 먹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죽지 않는 예수님과 한 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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