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한국 주교회의 상임위원회는『목전에 임박한 공산위협을 물리쳐야 할 현시점에서 국가안보에 해로운 온갖 사회부조리와 불안을 제거하고 건전한 비판세력인 성직자ㆍ지식인ㆍ언론인들의 투옥ㆍ연행ㆍ추방 등의 희생을 막기위하여 한국 주교단은 그동안 사제들이 중심이 되어 자발적으로 전개하던 현실비판과 인권옹호 운동을 주교단이 책임지고 차원을 높여 정부와의 직접대화로써 해결할수 있기를 소망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교회와 국가는 그 구성과 목적이 서로 다르면서도 그 작용의 대상이 경합되기 때문에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다. 즉 교회는 초국가적인 구성과 초현세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복음활동의 대상은 어느 국가엔가 속해있는 국민들이다. 따라서 모든 국민은 국가적인 의무와 사명을 지고있는 동시에 또한 인간으로서 하느님에 대한 의무와 사명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는 비단 하느님을 믿는 신자뿐만이 아니라 국가가 저버린 인간과 가장 흉악한 범죄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을 그 구원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결국 교회는 인간집단인 모든국가를 또한 구원의 대상으로 삼고있는 셈이다.
국가는 지상의 복리를 추구하며 특히 제 나라의 이익을 앞세운다.
즉 어떻게 하면 제 국민이 부자가 되고 현세적인 행복을 많이 누릴 수 있을까를 걱정하는 것이 국가의 사명이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는 산업을 개발하고 문화를 진흥시키고 국민보건 등에 힘쓰는 동시에 소극적으로는 범죄를 다스리고 국가안보에 힘쓴다. 그러나 그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은 결국 제 나라의 이익에 집중된다. 오늘의 많은 정치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는 인권과 정의와 세계평화도 필경 제마다의 국가 이익을 그 판단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초국가적인 교회가 말하는 인간의 존엄과 선과 정의의 질서 및 그를 통한 인류의 평화와 반드시 일치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할것이다.
교회가 보는 국가관도 앞에서 말한 국가의 현세적 사명을 부정하지는 아니한다. 그러나 교회의 목적은 국가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르치는대로 모든 인류의 구원을 그 목적으로 하고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국가의 이익을 위하여 있는것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의 행복을 보장하고 증진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데 그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있는것이다.
즉 국가는 인류구원이라는 교회의 초자연적인 목적을 위한 현세적 생활을 보장하고 증진시키는데 그 본래적인 사명이 있다고 보기때문에 적어도 국가가 추구하는 초자연복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그보다 고차원 초자연복리를 거역할수 없다고 한다. 또한 교회가 말하는 선과 정의와 공동선의 판단기준은 어느 특정국가의 이익과는 관계없이 보편타당한 진리에서 구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국가와 교회간의 가치판단 견해차는 특히 어떤 국가의 안보문제에서 크게 드러난다. 작금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정의구현 사제단과 정부와의 갈등이 바로 그 예이다.
정의구현 사제단은 국가의 안보보다 인권유린과 부정부패와 불신사조의 규탄에 열을 올렸고, 정부는 국가안보를 인권이나 부정부패 보다 앞세웠다. 이와같은 견해 대립이 극도에 달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주교회의 상임위원회가 정부와의 대화를 통한 시정을 가로막고 나섰다는 것은 불행중 다행한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안보문제가 절실하고 긴박하다는 것은 크메르와 베트남의 패망과 더불어 더욱 명백하여졌다. 그러나 그 안보는 결코 인권유린이나 부정부패나 불신사조의 조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런때일수록 정부는 국민을 아끼고 부정부패와 부조리를 철저히 시정하고 정부와 국민 및 국민상호간의 불신사조를 불식함으로써 국민 총화를 이룩하고 국민과 정부가 일치단결하여 국가안보에 힘쓰도록 최선의 성의와 노력을 다해야 할것이다.
한편 교회는 당면한 우리의 국가안보가 정면으로 교회의 구원사업에 도전하고 있는 공산주의와의 대결이라는 점을 깊이 배려하여야 할것이다. 공동선이 개인선에 앞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적인것과 같이 공산침략의 배제가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화급한 문제라고 하겠다. 이 말은 결코 교회가 인권유린이나 부정부패를 묵인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악을 제거하는 최선의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나 교회는 선과 정의에 반하는 모든 악을 지적하고 경고하고 시정할 사명을 띠고있다. 이와 같은 교회의 복음활동은 하느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이루어질때까지 계속될것이다. 그러므로 국가는 교회의 복음적 사명을 이해하는데 노력하고 악의 제거에 협력함으로써 모든 국민이 국가안에서 평화와 행복을 누리고 그 행복이 영원한 삶인 구원에 연결되도록 힘써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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