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펜벗중에 끌라라와 데레사라는 소녀들이 있다. 이들은 처녀의 몸으로 서대문 구치소를 드나들며 수인의 벗이 되어 사형수들과 대화를 나누고 편지교환을 하며 책을 보내주고 한달에 한번씩 면회를 가고 가끔 영치금을 넣어주고 오기도 한다. 그러나 결코 이 소녀들은 가정이 부유해서 그런 일을 하고있지는 않다.
끌라라양은 영동포에 있는 어느 피복공장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동료들이 구경갈때 가지못하고 유행따라 옷도 해입지 않고 화장품 값을 절약해서 가는 면회인 것이다. 더구나 교도소에서만 사용되는 특수봉함엽서 때문에 기숙사 직원이나 동료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되며 우체부가 올 시간이면 미리 밖에나가 대비하는 긴장속에서 쓰는 편지인 것이다.
지금은 부산에 살고있는 끌라라양이지만 지난 10월 병상에 있는 나를 찾아 일부러 왔을 때 내 주위사람들은 모두들 한마디씩 했다. 부산에서 여기까지 찾아온 것은 오직 신앙의 힘이었다고.
어느날 끌라라양은 서울 구치소에서 J시로 이감된 사형수 K씨를 찾아갔다고 한다. 그곳 교도소에서 끌라라양은 자신이 보내준 묵주와 기도서를 개신교 신자들의 방해로 받지못한 사실을 알고 서무과에 들려 찾아서 전해주고 그곳 본당 신부님을 찾아가 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더니 이 사실을 알게 된 그곳 본당 수녀님은 남자도 하기 어려운 일을 해주었다고 앞으로는 교도소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갖기로 다짐까지 해주셨다 한다.
나는 감격해서 복음의 실천자란 바로 끌라라양과 같은 사람이라고 반가와하니 오히려 끌라라양은『다만 할 일을 했을뿐』이라고 겸손하게 대답한다.
그리고 높고 붉은 벽돌담안에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무언가 자신의 삶을 반성할수 있는 기회가 되고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할수 없는 아픔을 배웠으며 그토록 난폭했던 사형수들이 진심으로 누이동생이 되고 친구가 되어 사랑을 베풀어 줄 때 그분들은 스스로 하느님의 참된 사랑을 깨닫고 알게되며 형장에서까지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로사리오의 기도를 바치는 경건함을 보여주게 된다고.
나는 오늘도 이 소녀들로부터 사형수들을 위해 위령미사를 청하고 그분들의 가족을 방문해 주었다는 착한 편지를 받으며 다시 한번 주님의 말씀을 생각해본다. 『누구든지 나더러 주님 주님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마태오13ㆍ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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