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아름다운 훈풍이 불어오면 신록은 짙게 만천하에 가득차고 개나리 진달래 복숭아 그리고 라일락들이 시들은 후, 꽃중의 여왕인 장미꽃이 다시 더 5월의 천지에 향기를 불러 일으키는 이 호시절!
우리는 이 5월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전 인류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께 봉헌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는 또한 결실의 계절인 10월도 역시 우리의 어머니에게 봉헌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한 분의 어머니, 마리아를 이 세상에 보내시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계획과 은총으로서 준비하셨는지를 안다면 교회가 신록의 5월과 결실의 10월을 성모님께 바치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행위인가를 이해하게 될것이다.
그런데 제2차「바티깐」공의회에서는 소위「에큐메니칼 운동」이라는 이름하에 성모 마리아를 신앙생활의 제3선에 돌려버리려는 경향이 보편화되고 말았다. 물론 우리가 갈라진 형제들과 대화를 나누려 할 때「성모 공경」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 앞에서 지나치게 마리아를 공경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 슬기로움을 잃지않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상생활, 곧 신앙생활에 있어서 성모 마리아를 제3선으로 돌려놓는 것은 잘못이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있어서는 아예 성모님에 대한 공경을 중요시하지 않는 경향까지도 있다. 이것은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Ⅱ
초대교회의 신도들은 그 누구도 조금의 의심도 없이 마리아를『하느님의 어머니』라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감에 따라서 여러가지 이단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에「에페소」공의회에서는 예수님을 곧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낳으신 어머니는『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것을 흔들릴 수 없는 교리로서 선포하였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로서 인정하지 않는 자와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인정하지 않는 자를 이단으로 규정했다. 그러기 때문에「나탄시오」의 성 그레고리오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공경하지 않는 자는 진정 하느님의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말했던 것이다.
그러한 성인들의 입을 빌릴 필요없이 우리는 복음안에서 그 신학적인 근거를 얼마든지 찾을 수가 있다.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은 방문했을때,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차서 큰소리로 마리아를 향하여 이렇게 외쳤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주님의 어머니가 나를 찾아주시다니!』 (루까1ㆍ42~43) 이에 대해서 마리아께서는 겸손되이 말씀하셨다. 『내게 큰일을 해주신 전능하신 분의 은혜입니다』(동1ㆍ49)
창조주의 어머니! 하느님의 이 놀라운 섭리를 우리들 인간의 머리로써 어찌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제2차「바티깐」공의회에서는 교회의 신비를 신중히 연구하면서『마리아는 전 인류의 어머니이며 교회의 어머니』라고 선언하였다. 그것은 성모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이시며 예수께서 전 인류를 구속함에 있어서 인류를 당신과 결부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모님은 전인류의 어머니이시다.
또한 그리스도의 신비체가 교회라면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는『교회의 어머니』인 것이다.
Ⅲ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성모 마리아께 대한 올바른 인식을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과거에 있어서 우리 교회가 너무나도 지나치게 성모 마리아를 공경 아닌 흠숭으로까지 예배한 점이 없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그것은 확실히 지나친 일로서 차라리 미치지 못한 것만 같지 못하다.
둘째, 마리아를 우상시함으로써 마리아 공경을 미신화시키는데 대한 오류를 제거해야 한다.
셋째, 그렇게 함으로써 마리아께 대한 정당하고 합당한 공경지례를 바치고 우리 모두가 자녀로서의 어머니께 대한 사랑과 어머니의 품에 안기는 효성을 가져야한다.
사실 우리는 모두가 죄인이다. 스스로 의인이라 칭할만큼 완전한 성모는 없기 때문이다. 아니 그가 성덕이 높으면 높을수록 스스로 겸손함으로써 자신을 죄인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는것이다. 따라서 우리 교회의 구성원은 아무리 성덕이 높은 성인일지라도 또는 교황이나 주교 성직자들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성모 마리아께 겸손되어『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으소서』하고 기도한다. 이와 같이 우리는 스스로를 결코 의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이 세파에 시달리고 악에 물들은 사회안에서 우리 스스로는 악에 파묻혀 만신창이가 되어 상처를 입고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매만져주고 치료해줄 부드러운 어머니의 손길이 필요한 것이다.
『오 고통받는 우리 모든 인류의 어머니시여, 우리 희망의「샛별」이시여! 우리가 시련을 당할때 우리의「상아보탑」이 되어주소서! 그리고 항상 우리 죄인을 위해 빌어주소서 이제와 우리 죽을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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