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전교의 달이다. 해마다 전교의 달이면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다. 30여 년 전쯤일까 아마도 우리나라에 파리 외방 전교의 신부들이 파견된 마지막 기호였던 것 같다. 2백 년 전처럼 피 흘리는 순교의 땅은 아니었지만, 이 때만해도 프랑스에서 한국 땅에 사러 온다는 건『가진 것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러』오는 것이었다. ▲ 이분은 솔본느출신 신부로 명문출신답게 자존심도 대단했고 1등 국민이라는 자부심도 대단했다. 그렇지만 한국말을 배우는 데는 무척 힘들어했다. 그분의 한국말은 서툴렀고 좀 처럼 본당사목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말이 서투니까 사람을 꺼려했고 더욱 말 배우기는 어려워 졌다. 머나먼 동방의 작은 나라에 복음을 전하러왔으면서도 한국말을 배우지 못 해 허송세월하는 벽안의 선교사가 몹시도 딱하게 보였다. 말을 잘 못하니까 본당부임은 자꾸만 늦어졌다. ▲이런 모습이 보기가 딱해서 어느 날 단도직입적으로 충고를 했다.『한국에 전교하러왔으면 죽자 살자 한국말을 배워야 할 텐데 왜 열심히 하지 않느냐. 그 하찮은 자존심은 도저히 못 버리겠느냐』고. 그 신부도 답답했던지 소리를 쳤다.『자존심 때문이 아니다. 내가 한국말을 잘 못 하는 건 하느님 탓이다. 그리고 전교는 말로만 하는 줄 아느냐. 내 선배 신부 한 분은 50년이 넘도록 이 땅에 살았지만 아직도 나보다 한국말이 더 서툴다. 그래도 그분은 본당 신부 노릇을 잘하고 있고 군수, 서장, 우체국장도 모두 영세시켰다. 전교는 말보다는 생활로 하는 것이다.』 ▲과연 이분은 그 후 본당을 맡아 말은 서툴러도 사목을 잘했다. 잘사는 사람 못 사는 사람가리지 않고 판자 집, 움막집까지도 찾아다니면서 그 집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신자들을 사랑했다. 그래서 그 본당은 많은 예비자들이 모여들었다.『전교는 말로서만 되는 게 아닙니다. 생활의 모범으로서 하는 것입니다』아무리 신자수가 늘어나도 대국민 신자화율은 변하지 않는 이때 더욱 절실하게 그분의 말이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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