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주교단의 차량들이 엔진배기량 1500cc 이하로 낮추어졌다는 사실이 최근 주교회의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10월 6일 주교회의추계정기총회가 열리고 있는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 차에는 스텔라를 비롯,「로열프린스」「맵시」「브리사」등 약간은 낯선 느낌의 차량들이 자리를 잡아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해 주었다. 이들 차량모두가 배기량이1500cc이하였음은 물론이다.
배기량 1500cc 이하의 차량이란 배기량으로 계산할 때 소형차에 해당한다. 차체 값은 물론이고 배기량이 적으니 세금 역시 싼 것은 당연한 논리이다. 게다가 기름마저 적게 들어가니 운영경비도 자연히 삭감될 것이다.
검정으로 거의 통일되다시피 했던 차량색깔이 쥐색(짙은 회색), 청회색, 크림색 등 다양하게 변화를 보인 것도 차량자체에서 줄 수 있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부드러운 느낌을 전해줄 수 있다는 점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잇점으로 전망되고 있다.
주교단이 차량을 낮추어 바꾸기로 결심한 것은 지난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7월 14~16일까지 열린 바 있는 주교연수회에서 주교단은『청빈정신 실천의 모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주교들의 승용차를 엔진배기량 1500cc(스텔라)이하로 낮춘다.』고 의견을 모으고 그 시기를 주교회의 추계정기총회 이전까지로 잡았던 것이다.
주교단의 이 같은 용단은 그 배경을 속 깊이 알 수 없지만 앞서 지적한대로「청빈정신 실천의 모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기초로 하고 있다.「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말 뒤엔 참으로 많은 얘기들이 함축돼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무섭게 치닫고 있는 현 사회의 소비풍조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될 수도 있고 외화내빈의 모습이 걱정되는 오늘의 교회에 대한 대비책으로 풀이해 볼 수도 있다. 실제로 풍요와 빈곤의 불균형ㆍ부의편재로 인한 사치와 낭비의 물결은 오늘 우리시대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사회 속에서 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교회 역시 이 같은 흐름에 합세하고 있다는 우려도 심심지 않게 부상하고 있다. 부의 문제가 교회와 함께 묶여진다는 사실은 유쾌하지 못한 일이 분명하지만 우리는 교회의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가난해져야한다는 것은 알면서도 그 실천방안은 매우 어렵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해야 하는 교회도 가난해지는 방법을 쉽게 찾지 못하고 있다. 주교단이 배기량 1500cc이하의 차량을 선택한 것은 교회에 대한 냉정한 직시 끝에 내린 결단으로 어려운 실천의 시작이 분명하다. 그것은 어쩌면 교회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자연스런 모습이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다함께 그 시작에 합세하는 것, 즉 삶으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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