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이 세상에 출현하면서부터 인류가 사는 곳에는 언제나 종교가 있었고 그 종교의 대상인 신을 공경하는 경신례의 중심은 제사였다.
이 제사는 인간 본성의 자연적 발로이다. 카인과 아벨이 하느님께 제사를 드린 사실을 창세기에서 처음으로 찾아볼 수 있고 하느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는 가운데 하느님에 대한 제사를 명령하셨다. 이 구약시대의 빠스카의 신비를 배경으로 최후만찬과 십자가상의 희생을 거쳐서 부활이라는 현의를 절정으로 풍부히 드러내는 이 제사는 빠스카 신비의 완성을 나타내고 있다. 미사는 바로 이러한 구세사의 완전한 능력과 힘을 제현하는 신약의 새로운 제사이다.
그러므로 이 미사는 교회가 하느님께 바치는 흠숭지례의 극치이며 완전한 찬미와, 감사, 속죄, 청원의 제사이다. 이보다 더 풍부하고 완전한 기도는 없다. 그러기에 교회는 미사를 모든 전례의 중심으로 지금까지 보존 발전시켜 왔으며 앞으로도 이 세상 끝날까지 계속시키며 구원사업을 완성시켜 나갈것이다.
지난주 본보에서는 대구대교구 내 몇몇 본당의 연중 생미사 현황을 조사하여 밝힌바 있다. 타교구에 비해서 신자수가 많고 또한 신자들의 신심도가 꽤 높다고 알려진 교구이고 그 중에서도 구교우가 많고 전통있는 N본당과 시내 중심가의 D본당의 생미사 현황이 고작 월 10대 내외라면 대구대교구의 변두리와 시골본당의 현황은 빈약하기 짝이 없을 것이고 타교구의 사정 또한 이와 비슷할 것으로 보여진다. 생미사 신청이 없다고 나머지 미사는 모두 위령미사로 매꾸어지고 있는것도 아니다. 대도시 중심가에 위치한 본당을 제외하고 나면 나머지 대부분의 본당에서는 대부분의 미사를 공미사를 드리고 있거나 외국의 달러미사을 드리고 있는 서글픈 실정이다.
신자들의 미사예물이 없어도 구원의 비사인 미사는 계속 봉헌될 것이고 그리스도께 일생을 바친 사제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의 섭리는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결코 목자들을 방치해 주지는 않을것이다. 문제는 더 근본적인 해결을 요구하고 교회와 신자들의 심각한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미사 예물은 첫째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모든 것을 버리고 일생을 봉사하는 사제들의 생활비를 충당해 주는 것이이다. 일꾼이 주인에게 품삯을받는것은 당연한 일이다.
둘째로 미사를 청하는 사람의 정성을 말해준다. 기도는 그 사람의 정성에 의하여 하느님의 은혜를 적게, 혹은 많이 받을수 있고 때로는 전혀 못받을때도 있다. 카인과 아벨의 제물이 하느님 대전에 각각 다르게 받아들여졌고 구약시대의 제물은 햇곡식이나 맏배의 어린양으로 흠이없는 것이어야 했다.
그리고 가난한 과부의 두 푼과 부자들의 많은 돈의 헌금을 보시고 하신 말씀은 오늘날의 우리들을 부끄럽게 하고있다. 쓰고 남은 예물에 정성이 있을리 없고 정성이 없는 곳에 하느님의 은혜가 있을리 만무하다. 그러므로 너 나 할 것 없이 일정한 금액에 일률적인 예물에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더 근본적인데 있다. 신자들은 미사의 풍부하고 완전한 영양소를 충분히 흡수하지 못하고 있는것 같다. 신자들은 하느님께 무엇을 달라고 청하는데는 대단히 예민하다. 찬미와 감사와 속죄행위에는 대단히 우둔하고 인색하다.
위령미사 사업타개 건강회복 가정의 평화 진학 등을 위한 지향이 생미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이것은 울기 잘하고 감사드리기에 인색한 민족성에 이유를 돌릴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하느님의 은혜를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오히려 하느님의 은혜를 보는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일것이다. 자기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에게 이웃형제들의 불행과 고통을 위해서 미사를 봉헌하리라고 기대하기에는 너무나 어렵다.
교회는 신자들에게 감사와 찬미의 생활을 하도록 복음을 연구하여 메시지를 선포하는데 역점을 두어야 할것이다.
미사예물의 금액에 대한 지나친 강조와 관심으로 인하여 미사를 생활의 방편으로 전락시키는 오해와 오명을 지양해야 할것이다. 그리고 신자들의 기쁨과 고통을 잘 알아 함께 하느님의 자비와 은혜를 전구해줌으로써 신자와 사제간의 상호일치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자들의 생활을 전례생활에 합치시켜 신앙생활의 중심이 미사임을 일깨워 주어야 할 것이다. 덧붙여 언급하고 싶은것은 시골이나 도시 사제간의 생활 평준화를 위하여 양심적이고도 기꺼운 자세에서 공동분배 제도를 실시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됨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하겠다.
그러나 사제를 미사 예물의 도구로 전락시키거나 미사를 회피하는 등 미사 예물을 공금화함으로써 자칫 빚어지기 쉬운 부작용과 비양심적인 잡음을 막아주기를 아울러 제언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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