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개신교신자였습니다. 우연히 열심한 천주교신자를 알게 되어 개신교와 천주교를 비교해 보았는데 천주교에는 고해성사와 성체성사가 있어 특히 내 마음을 끌었습니다.
성세성사를 받은 후에도 죄를 짓게 되는데 이때 고해성사를 봄으로써 다시 영신이 깨끗해진다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미사 때마다 살아있는 예수님의 몸을 영할 수 있어 예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과 한 몸이 되기 위하여 천주교를 믿어야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당시 부산에는 범일성당과 청학성당 두 곳이 있었는데 나는 가까운 범일성당에 가서 불란서인 남 신부님한테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영세 후 처음에는 열심히 성당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오래 다니다보니 주일미사에나 겨우 참여하는 껍데기 신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면 때때로 회초리를 드는 것과 같이 하느님께서도 나에게 여러 번 회초리를 드시었습니다.
첫 번째 회초리는 나를 감옥으로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일제시대 나는 공무원이었습니다만 일본인 상사와 사상문제로 언쟁한 것이 화근이 되어 끝내는 관직에서 파면이 되고 징역까지 살게 되었습니다.
1년간의 감옥생활동안 나는 많은 기도와 신앙공부를 하게 되어 출옥한 후에는 열심한 신자가 되었습니다. 나는 이것이 하느님의 사랑의 매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회초리는 국회의원선거 낙선이었습니다.
해방이 되자 나는 정치가가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돈이 많이 필요해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었습니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나는 교회에도 많은 돈을 바치고 교육 사업에도 많은 돈을 투자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솔직히 말해 선거기반을 다지기 위한「투자」였습니다. 5년 동안 기반을 닦은 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많은 돈을 뿌렸어도 결과는 낙선이었습니다. 제3대 선거 때도 낙선했습니다.
나는 이것도 하느님의 사랑의 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일 내가 그때 당선되었더라면 명예와 돈 밖에 모르는 정상배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회초리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빼앗기게 된 것입니다.
사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늙은 부부가 살기에는 너무 큰 집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집에 매우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해방 후 지금까지 40여 년간을 살아왔을 뿐 아니라 6 ․ 25때는 노기남 대주교님과 성 바오로회 수녀님 70여명이 피난 와서 사셨으며 3년 동안 미사가 드려진 성스러운 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작년 남의 채무에 보증을 잘 못서는 바람에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만 집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나는 이번 회초리를 맞고 너무 큰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요, 살아가는 동안 가지고 있는 재산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나 모두가 하느님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내 나이 77세에 늦은 감이 있지만 물욕을 버리고 신앙생활에 열중하게 되었고 자식들의 효도도 받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때로는 하느님의 회초리가 더 있으리라 믿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매일의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는 생활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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