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고개가 넘고 보니 고적한 나날이 진정 견디기 어렵다. 정답게 지내던 친지들은 거의 모두가 세상을 떠나고 어쩐지 나 홀로 버려진 것 같은 서글픔이 차오른다.
옛날에는 70만 돼도 장수를 한다고「인생칠십 고래희」라고 했지만 이제는 70쯤은 흔해진 모양이니 그만큼 세상이 좋아진 것 같다.
영양식도 쉽게 구해 먹을 수 있고 의약도 크게 보급되고 있으니 가히 태평천지라 할 것 같지만 꼭 한 가지 돈 가지고도 천하 명의로도 고치기 어려운 증세가 있으니 그게 바로 곧「고독」인 듯하다.
밤은 깊어 가족들은 잠들고 창 밖에서는 바람이 나부끼는 낙엽들의 애가만이 구슬플 때 혼자 자리에 누워 있노라면 어느덧 고독한 심정이 끌어올라 가슴에 넘칠 때 그 심정은 당해보지 않고는 짐작조차 못할 것 같다.
아내와 손자는 다른 방에서 곤히 잠들고 남창에 어리는 달빛만이 나를 지켜보는 듯 까닭 모를 서글픈 심정이 가슴에 끌어오르게 되면 진정 참기 어려운「고독 후회 추념」에 빠지고 만다. 이런 때 나는 실컷 울고 말지만 진실로 걷잡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요사이는 늦게나마 깨달은 바 있어 우선「십자고상」을 북벽에 남향해서 걸어 뫼시고 수시로 머리를 숙이고 묵도를 올린다. 그때 나의 심정은 맑고 깨끗해지고 마치 어린 아들이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느끼는 것과 다름없이 흐뭇해진다.
눈치를 본 루치아(아내)는 민망스러운 표정으로 넌즛이 속삭인다.
『따뜻한 차라도 같이 마십시다.』천하가 온통 곤히 잠잘 때 우리 부부는 신앙으로 승화된 의젓한 인생행로에서 2인 3각으로 따뜻하고 지대한 강복을 누리게 된다.
종교는 편안하고 풍족할 때보다는 불운에 빠지고 고통에 신음할 때 비로소 그 빛이 밝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모든 신자가 다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언제나 어려운 고비에서 혼자 고민할 때 염치없이 성모님께 호소를 드린다.
내가 만일 천주교에 입교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때 무슨 수로 마음을 가다듬고 새 광명을 받아보았겠는가. 이럴 때마다 6ㆍ25 부산 피난 때 세례를 주신 수정동 천주교회 미국인 권 신부님 생각이 간절해진다. 그분이 생존해 계시면 아흔이 가까우실 것이나 살아계시면 반드시 우리 일가를 위해 기도해 주실 것이다.
종교는 믿고 나면 주관이 뚜렷하게 되고 제법 도리를 알게 된다지만 나는 아직도 권 신부님이 일깨워주시던 일언일구가 모조리 나의 여생의 정신적 양식으로 삼고 지내니 나 같이 숱한 강복을 누리는 자도 그리 흔치는 않을 듯하다.
그러기에 내 생각으로는 성직자로서 교회에서의 행동은 천언만구의 강론보다 더욱 중요한 것 같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성직자를 잘 만나면 모두가 즐겁게 마음 편히 교인으로서의 길을 똑바로 마음 흐뭇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다 그렇겠지만 나는 입교할 때 권 신부님을 만나뵈온 것을 다시없는 행운이요 몸에 넘치는 강복으로 여기고 있다.
이제는 소식조차 끊긴 권 신부님을 추모하는 마음 더욱 간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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