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사무처인 CCK는 최근 1974년도 한국 천주교 교세통게표를 발표한바 있고 본지는 6월 1일자에 통계표의 증가 감소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한바있다
이번 통계표를 보고 다행하게 느껴지는 것은 한국 가톨릭도 이제는 신자수에 있어 고대하던 1백만대를 돌파하였다는 사실이다. 1백90년전 이승훈이 북경에 가서 한국 천주교의 시발을 회상하면 오늘의 1백만 가톨릭 신자라는 수는 너무나도 대견하고 경사스러운 결과라고도 말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다른 한면으로 생각하면 부끄러워 해야할 기분도 없지않다. 요즘 어떤 신흥종교는 그 역사가 불과 10여년에 1백만 또는 3백만의 신도수를 과시하는 종교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의 1백만은 그다지 자랑거리가 못될것 같다. 신앙의 내용이나 질을 가지고 수의 열세를 자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자기 반성의 기피가 될것이다. 결코 우리의 발전은 최선을 다한 발전이 아닐것이다.
오늘의 몇몇 신흥종교가 그 많은 신도를 이끌기 위해 그들이 쓰고있는 지혜와 열성이 어떤 것인지 안다면 과연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지혜와 방법을 다써왔던가 반성해야 하겠다. 그 열성을 다해서 발전한 것이 1백만 가톨릭 신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렇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안으로 눈을 돌려볼 때 1백만 가톨릭안에 있는 문제를 간과해서도 안되겠다. 1백만이라는 숫자 안에는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는 교적상의 신자가 포함되었는가 하면 교적 하나 제대로 정리 못하고 소속을 뚜렷하게 못한체 있는 신자도 포함되고 있다.
그뿐이랴. 12만의 냉담자까지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다. 통계표가 제시하고 있는 냉담자란 적어도 3년 이상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고있지 않는 신자를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범주에 속하는 신자수 안에는 오늘 현재 열렬한 신앙생활을 하고있는 신자도 있겠으나 통계상으로는 신앙의 생명력을 잃고 있는 숫자가 15만에 가깝게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작년 일년에 증가된 냉담자의 수는 전년도에 비교하여 5, 463명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통계숫자는 그만큼 교회는 병든 자녀를 자기품안에 안고있다는 풀이가 될것이며 그와 같이 교회도 병들고 있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에 곁들여 교세통계표 작성과정에서 보다 신중을 기해주기를 당부하고 싶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교적 재발견자는 작년도에 이미 완전히 정리, 신자수에 가산토록했던 것으로 알고있다. 그런데도 금년도 통계표 가운데 전국 14개 교구 중 11개 교구에서 교적 재발견자가 나타나고 있음은 실로 유감스런 일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또한 10개 교구에서 감소요인에도 없는「기타」감소 숫자가 발견되고 있는것도 이해하기 힘든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교세통계가 1년간의 변동상황을 파악, 새로운 사목대책 수립의 자료로 삼을수 있기 위해서는 여기에 나타난 모든 자료는 가장 정확해야 하고 그 작성은 최대한의 정성을 기울여야 할것이다.
또한 우리는 1백만대 신자수 돌파만으로 자위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이만큼이라도 성장한 오늘의 교회가 지금까지의 발전속도로만 계속하거나 또는 퇴보의 길을 걸어서는 안되겠다고 느낀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 자체가 지니고 있는 신앙의 생명력을 보다 싱싱하게 불러 일으키는 운동이 연구되고 전개되어야 할것으로 믿는다. 구체적인 말로 한다면 성직자나 평신도나 누구나가 처하고 있는 자기주변을 성화시킬수있는 능력의 증대가 시급하다.
자기 주변을 성스럽고 또 기쁘게 꾸려가지 못한다면 어느 누구가 우리를 따라올 것인가?
오늘의 신앙인은 맡은바 책무를 충실히 수행하면서 우선 성스러운 마음가짐을 가져야겠고 우리의 이웃에게 기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줄수 있어야 하겠다. 교회가 첫째 해야할 일은 설득이나 투쟁이기 전에 감화의 힘을 보여줄수 있어야 할 것으로 안다. 다음으로 성스럽고 기쁘게 사는 교회는 일치 단결하지 않을 수 없다. 주교단의 일치, 평신도들의 일치가 어느때 보다도 가장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다양성(多樣性)의 이름으로 일치가 깨어진다면 신앙은 빛을 잃고 교회는 힘을 잃고 마는 것이 아닐까? 성스럽고 기쁜생활은 사랑을 유지케하는 교회안의 다양성도 일치속에 조화를 이루게 해줄 수 있다고 확신하는 바이다. 교회의 강력한 일치, 그것은 바로 성직자나 평신도가 다함께 주님안에 하나가 되어 있다는 증명이요 모든 이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최선의 전교 방법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바라건대 주교단은 일치의 상징이 되어 사제단의 일치를 가능케 해주기 바라며 성화에 봉사하는 사체단은 그들 스스로 형제애로 단결되어 1백만 신자들을 하나로 인도해 주기를 호소하는 바이다.
이제 1백만 신자에서 1천만으로 비약 발전하는 교세확장의 비결은 다른 어떤 사업에 앞서 여기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일치 없이는 성스러움도 감화의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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