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내 곁을 떠난 숙이가 어버이날을 하루앞둔 지난 7일 저녁때 다시 돌아왔다.
어려서 부산 어느 보육원에 버려진채 아빠 엄마를 모르고 외롭고 쓸쓸하게 자라다가 우리집으로 와서 처음 얼마동안은 물위에 기름들듯 눈치만 슬슬보며 어울리지 않고 서먹서먹해 하더니 차차 정이 들자 집안일도 곧잘 도와주고 아이들을 보살피며 특히 소아마비로 고생하는 은숙에게 세심한 신경을 쓰면서 나를 친엄마처럼 따랐다.
어렵고 쪼들린 환경에서 남에게 욕을 들으면서도 반대를 무릅쓰고 숙이를 여학교에 보내어 친딸처럼 양육시키고자 했다. 모든 슬픔을 잊고 미래의 행복을 꿈구며 예쁜 모습으로 성장해가는 숙이의 졸업을 며칠 앞둔 어느날 난데없이 그의 생모가 불쑥 나타났다.
순간 괴씸한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지만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도 어찌할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고 또 과오를 뉘우치며 속죄하는 마음으로 못다한 모정을 쏟아 바치겠다면 애원하기에 가기싫다는 숙이를 달래고 타일러 억지로 생모에게 둘려주었다. 그 후 몇 번 잘있으며 길려준 은혜에 보답하는 뜻으로 나를 위해 기도드리고 또 저보다 더 불우한 사람들을 도와주며 일생을 착히 살아가겠다는 편지를 보내오더니 왠일인지 일년 가까이 소식이 뚝 끊어졌다.
그러한 숙이가 뜻밖에 선물꾸러미를 내밀며 쓰러지듯 내 앞에 엎디어 울음을 터트린다. 반가운 마음보다 걱정이 앞서 성급한 질문을 막 퍼부어도 한동안 말도 못하고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기만 한다. 한참을 울다 겨우 진정이 되는지 말문을 연다. 그간 어느 회사에 취직하여 매달 월급을 몽땅 엄마께 바치고 한푼도 못 써봤고 지난달에 처음으로 옷 한 벌 맞춰 입느라고 돈을 제가 타썼더니 이유불문하고『어떤 놈에게 돈 다 갖다 바쳤느냐? 벌써부터 사내를 사귀느냐』면서 복날 개패듯하며 신앙생활마저 금하고 걸핏하면 머리카락을 쥐어뜯는다고 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말씀을 생각하며 인내하려 무진 애를 써 노력해 왔으나 더 이상 참을수도 없고 도저히 정이 안들어 못살겠다 하며 이제 죽어도 생모한테는 안가겠다고.
만약 다시 돌려보낸다면 차라리 자살을 해버리겠다면서 울먹이는 숙이를 부둥켜안고 분통이 터지려는 것을 간신히 억제하며 눈물을 거두고 주님의 크신 자비와 사랑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며 신앙이 없는 숙이 엄마에게 믿음의 은총이 내려지도록 빌자고 권하면서 숙이와 함께 십자고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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