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쉬고싶을 때 텔레비전을 본다.
종일을 잡다한 일들에 시달리다가 저녁결에 겨우 마음을 늦추고 텔레비전을 향해 게으른 눈길을 편다.
방바닥에 허리를 붙이고 비스듬히 누워 익살스런 코메디나 구성진 가요나 흥미스런 연속극을 마음편한 상태에서 구경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헤프고 싱거운 웃음을 껄껄 웃어도 좋고 유치한 환성을 마음대로 질러도 누가 나보고 체신을 차리라고 면박주는 사람도 없으며 그냥 그대로 잠들어버려도 꺼리낄 것이 없으니 이 이상 더 자유로울 수가 없다.
독서도 내겐 작업일 수 밖에 없는 처지이고 보면 TV를 구경한다는 것처럼 부담없고 자유로운 휴식은 없다. 진종일 나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했던 어린것들이 제 풀에 고단하여져서 요위에 코를 박고 건강하고 평안스런 숨결을 들먹이며 잠들어버린뒤 헐거운 잠옷바람으로 만관 편하게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자면 아 이런 것이 바로 휴식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풀쩍든다.
그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리라.
고단한 생활인이면 누구나 다 나와같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렵고 고달프고 각박한 세상속에서 조금은 견딜 수 있다고 느끼는지도 모른다.
하다못해 남의집 세방살이를 하는 사람일지라도 TV 하나만은 꼭 갖고 살려고 하며 또 그런사람일수록 TV로부터 얻는 유락과 위안의 비중은 큰법이다. 하루종일 가사로 고달펐던 아낙도 저녁결이 되면 TV를 본다는 기대와 희망으로 즐겁게 일할 수 있으며 소외와 무료에 지쳐있는 노인네들에게도 TV는 정답고 소중한 벗이다.
팽대되는 사회적인 불안과 부조리가 축적시켜 주는 모든 고통과 불만과 분노와 공포감을 우리는 TV를 봄으로써 잠시동안이나마 잊을 수 있고 버릴수 있고 헤어날 수 있다. 물론 근본적인 해결은 될 수 없다 하겠지만 산다는 것이 순간순간의 이음이라고 본다면 TV로 해서 얻는 즐겁고 재미난 시간들의 의미란 결코 경미롭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일요일의 휴가가 별 소용없는, 집에서 노는 사람들까지도 토요일이 되면 작은 명절이라도 맞는듯 즐거워지는 이유도 바로 TV에 있는것이다.
TV가 지닌 의미와 영향은 이제 이만큼 막중하여져서 그 임무와 역할도 이만저만한 것이 안되게 됐다. 물론 TV는 모든사람들에게 유익함을 주어야 한다. 허나 재미없는 유익함이란 무용한 것이며 메마르고 답답한 세상속에서 우리가 잠시라도 얻고자 하는 유열과 쾌락마저도 빼앗아 버리는 잔인하고 무모한 짓이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가수 싱거운 드라마 어떤 목적이 과잉되게 노출된 어색한 코메디 등은 사람들에게 도리어 역겨움과 분노만을 불러일으켜 준다.
선(善)이란 악과 대비되어야만 강조되는 것이며 인간적인 결함이 전연 도의시된 선인(善人)이란 허수아비와 같다. 설렁 불륜일지라도 그것이 인간적인 흐름 속에서 진행되어 파국적인 종국에 이르게 한다면 그것이 바로 교훈적이 될 수 있는 유익한 드라마다. 담당PD의 부정이나 고지식한 견해가 인기없는 가수나 지리한 드라마를 속출케 하여 TV를 보는 서민들의 휴식과 즐거움마저 빼앗아서는 안될 일이다. 그것은 세상을 좀 더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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