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도무지 미덥지가 않다.
긴 장래에 대한 설계나 구상조차도 흐리멍텅해진채 그저 오늘을 살고있다는 단세포적이고 불안정한 감각속에서 나날을 때우고 있다.
한반도의 긴장이니 남침의 위협이니, 하는 따위의 정국적인 불안은 차치하고라도 지금 우리 주변엔 우리를 겁주고 괴롭히는 요소들이 너무나도 팽대 되어가고 있다. 우선 인구가 너무 많아져가고 있다는 사실이 시시각각 내 숨통을 조인다. 십팔년만에 서울 인구가 세배로 늘었다 한다.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서울 구석을 쑤시면 휭한 공지가 눈에 뜨이기도 했고 서울에도 이런곳이 있었구나, 싶은 서정과 휴식을 주는 전원적인 풍경을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서울 어느곳을 가봐도 먼지나는 인기척뿐이고 어수룩하게 풀포기가 점유해서 쉬고있는 땅을 찾아보기가 실로 어렵게 됐다. 마당에 봉숭아나 백일홍을 심어서 그 향기와 색깔을 즐기려는 사람들보다도 거기 대신 방 한칸이라도 들여 집세를 받자는 사람들이 훨씬 더 예사로와졌다.
살기가 이렇게 어렵다 보니 인심이란 것도 자꾸 자꾸 각박해져서 오고 가는 말들이 모래알처럼 매마르게 튀고 피로와 불안에 들볶이는 눈동자안엔 노상 조름기같은 고단함이 매달려 피차 대하고 앉았기가 민망스럽고 답답하다. 아, 이천만 겨례의 어쩌구 하던 것이 불과 삼십여 년 전쯤으로 알고있는데 이젠 남한 인구만도 삼천 5백만이 된다니, 앞으로 또 그만한 세월이 지나면 도대체 이 땅덩어리는 어찌될 것인가.
자라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측은하고 안되어 불쑥 눈물이 솟을 때가 있다. 저애들에게 좀 더 살기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어야 할텐데 하는 소망과 욕심은 매번 뜨겁게 솟구쳐지만 자꾸만 더 살기 어려워져 갈 세상속에 그들을 팽개친 것이 큰 죄를 지은 것만 같애 가슴은 도시 무겁기만 하다.
요즈음 또 농약이란 것이 우리들을 위축시킨다. 옛날엔 상점에 수복수북 쌓여있는 여름과일을 보면 단침이 오르고 식욕이 흠씬 솟았지만 지금은 불행하게도 거기에 묻은 농약부터 겁을 내야하니 산다는 게 차라리 살엄음판이다.
아이들 입에 과일을 저며 넣어주면서 심지어 나는 내가 지금 혹시 이 철부지 어린것들에게 독약을 먹이고 있는게 아닌가 해서 소름이 끼칠때가 있다. 어찌 식품 공해가 농약뿐이랴.
방부제를 넣어만든 빵과 쏘세지 비료를 뿌려 키운 콩나물 유해색소로 단장된 청량음료 석회를 넣어 빚은 두부 살충제를 뿌려 거둔다는 소금 심지어는 우리가 노상 마시고 사는 수도 물 속에도 갖은 해로운 광물질과 잡것이 끼어 쏟아진단다.
도무지는 무서워 견딜수가 없고 인간의 양심을 믿는다는 일이 점점 어렵게 돼가고 있다.
하도 세상이 독으로만 차있어서 그런지 요새는 부쩍 「암」이란 병이 성해가고 있다. 바로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바로 우리 가까이서 우리처럼 건강히 살던 사람들이 나도 암이요 나도 암이요 하고 여기저기서 쓰러져들 가고 있다. 그들의 죽음을 접할 때마다 나는 내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도무지 신뢰가 가지않고 곧 끊어질 생명줄에 어설프게 매달려 있는 듯한 초조와 공포에 몸둘바를 몰라지고 만다.
그러다 결국 나는 모든것을 하느님의 뜻에 맡기자는 체념속으로 도망쳐 버리고 만다.
어차피 나 혼자의 힘으로는 세상의 모든 비리(非理)와 패덕을 개선시킬 수도 없는일이고 또 불안한 미래를 막을수도 없는 노릇이고 보면 그런것들에 대해 머리를 쓰고 한탄함도 다 무모한 것이 아니겠는가.
단지 지금 여기서 내가 할 바란 나 하나만이라도 양심의 작은 등불을 치켜들고 닥쳐오는 하루하루들을 그저 충실히 온유하게 살아가는 길 뿐이라는 지혜가 요즈음 내 머릿속에 조금씩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누구든 나같은 마음씨로 산다면 산다는 일도 조금씩 나아질것이고 시시각각 우리들의 숨통을 조여오는 듯한 세상의 모든 불안으로부터도 약간은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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