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지금부터 꼭 50년 전에 당시 서울교구가 발행하던 경향잡지(7월 31일자)에는 이런 기사가 있다. 『80여년 전에 이 복자들이 휘광이들에게 끌려 수레를 타고 치명하러 새남터로 갈때에는 옆에서 비소하고 욕설을 할뿐이더니 오늘날은 그 유해가 금으로 꾸민 함에 담기어 주교와 신부와 많은 교우들이 엄숙한 태도로 즐겨 찬양하는 중에 영화로이 성전에 들어가 모든 교우의 친구를 받으셨으니 … 』 ▲그해 7월 5일 교황 삐오 11세에 의해 순교자 79명이 복자로 시복되자, 7월 12일 명동서 있은 복자유해 거동 및 유해 친구예절을 보도한 기사다. 이에 앞서 5월 5일 시복식 예정을 알리는 전보가 서울교구에 접수되자 경향잡지사는 주필인 한기근 바오로 신부를 5월 11일 「로마」로 파견, 시복을 취재케 했다. 「조선」신부 일동과「경성」교구 청년회 연합회는 교황 강복을 청원하는 상소문을 보냈고 청년회는 신자대표로 장면씨를 선출, 「로마」로 파견했다. 시복식이 있은후「경성」의 민 주교와 대구의 안 주교 원산의 신 주교 등 당시의 주교단은「새로나신 복자를 향하는 축문」을 반포했다. 주교단은 이어 8월 20일자의 교서를 통해 9월 25일부터 27일까지 전국적으로 3일 기구를 바치도록 당부했다. ▲ 1925년의 경향잡지를 보면 온 교회가 시복의 영광으로 감격에 차 있었음이 역력하다. 특히 한 신부의「로마」여행일기는 그 당시 교회의 유일한 잡지로서 사명을 다했다는 인상을 준다. 한 신부도 감격한 탓인지 잡지에선 항상「교종」으로 써오던 표현이 일기에선「교황」「성상」「금상폐하」로 바뀌고 있다. 고어체로 된 한 신부의 일기중 시복식 광경『백색1등 입전권은 본래 복자의 친척이라 기록하였는데 정말 친척은 1인도 없었고 진 신부 한 신부 장발씨 3인이 친척을 대표하였도다 … . 오전 10시 정각이 되자 홍의재상 6위가 각각 시종을 데리고 들어오시고 다음에는 대주교 주교 고등성직자 10위도 … 들어와 좌정하셨더라.… 치명자들의 큰상본을 다섯가지로 그려서 5처에 메달았으니 … 칙령 낭독후 휘장을 즉시 없어지게하고 전광으로 비치매 그 상본이 찬란하게 드러나니 이를 「영광」이라 일컫는도다. 영광이 드러났으매 천주께 감사하는 뜻으로 대풍금을 갖추어「떼데움」을 읊고 또한 복자의 축문을 창하시더라 … 본래 성당 내에서 손벽을 치며 만세를 부르고 수건을 내두르는 것은 합치못하고 또한 금하는 일이나 … 』시복때의 이 같은 감격이 옛 얘기가 된 것이 서글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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