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랑같지만 나는 고등학교때 꽤 공부를 잘하는 편에 들었다.
그리고 점수라는 것에 어찌나 집착했던지 시험을 잡치고나서 자살을 생각해 본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내가 쓴 답이 하나하나 틀려가는걸 발견할 때의 그 분함과 그 안타까움과 그 고통은 실로 내겐 죽음 이상의 것이었다. 이 시험과 영관된 우습광스런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고3 말기시험때였던가, 아무튼 시험을 잘 못보고 나서 죽을상을 해가지고 앉아있는데 내 건너건너편 자리쯤에 아이들이 한무더기 모여서서 저희들끼리 답을 맞혀보고 다 맞았다고 좋아서 환성을 지르고 있는게 보였다. 공부도 잘 못하는 애들인데다 시험문제도 상당히 까다롭고 어려웠던 편인데 그렇게 좋아들하고 있는게 이상타 싶어 나는 슬그머니 그쪽으로 다가가 봤다. 그래서 거기 벌어져있는 사태를 알아보곤 그만 웃음을 터트려 버리고 말았다. 그들이 서로 맞혀보고 맞았다고 소리를 지르는 답들이 모조리 틀려있는 것이었다. 정답은 생판 딴것인데 오답들을 같이써놓고 그것이 맞은줄 알고 희희낙낙해있던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픽 웃음이 터진다.
허나 그렇게 웃음을 터트릴 수도 없는 넌센스를 나는 요즈음 너무나 빈번히 목격하게 된다.
박동명 사건이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면서 인기연예인들의 매춘행위가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전부터 그런 얘기가 들리긴 했었다. 인기 탈랜트 누구하고 한번 자는덴 얼마, 아무아무개는 하룻밤 자는데 얼마, 하는 식의 야비하고 천박한 얘기가 내 귀에 들려오긴 했지만 나는 설마하니 했다
그런데 먼 단상의 꽃인양 흠모하고 경애하던 그 이쁘고 정결해 뵈던 일류 탈랜트들이 창부의 명단에서 속속 그 이름을 내미는걸 보고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한 둘이라면 그럴수도 있겠다 하겠다.
그들 나름대로의 구차한 사정이 있을수도 있으며 또 어느세대건 어느곳이건 그런 이단자는 있게 마련이니까.
허나 문제는 그것이「풍토」라고 불리울만큼 다수(多數)라는데 있다.
비단 그 성문란은 연예계뿐만이 아니다. 홍수처럼 번져 나가서 이젠 세상 구석구석까지 범람해 돌고 있는듯하다.
연인들끼리의 탈선은 당연지사요, 심지어는 길에서 만난 알지못할 사내, 버스간에서 우연히 가까이 앉은 남자하고도 여인들은 쉽게 잠자리를 같이 한다는 소리가 예사롭게 내 귀에 들려오고 있으며 나이어린 여학생들이 다방이나 음악실이나 고고클럽에서 잠시 자리를 같이한 사내들과 거침없이 살을 나눈다는 얘기는 차라리 나를 슬프게 한다.
어디서 시작돼 어떻게 조성된 풍조인지는 모르나 실로 기막힌 일이다.
그것이 「풍토」가 된 응어리 안에서는 그것이 설령 살인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그것이 잘못이라는 판별감을 잃어버리게 마련이다. 악도 다수 속에서 성행될 때에는 의당한 일로 착각되게 마련이다. 틀린 답을 써놓고는 그것이 서로 같다해서 맞았다고 소리지르던 내친구들처럼 사람들은 점차 깊은 착각속에 빠져서 자기들이 저지르고 있는 죄행들을 정답처럼 당연히 여기는듯 하다.
남도 하는데 내가 못할게 뭐냐, 다른 사람들도 모두 하니까 내가 하는 일도 옳다-그런 식의 무분별한 타협과 모방 속에서 악은 횡행하고 그 안에서 저마다의 양심은 마비되고 무능해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답이 오직 하나이듯 진리는 언제나 한길인 것이다. 너와 나의 답이 같다해서 그것이 꼭 정답일 수 없듯이 너와 나의 의견이 같다해서 그것이 반드시 옳은 일도 아닌것이다. 진리란 중론(衆論)속에 있는것도 아니며 인간이 제 필요에 따라 적당히 꾸며가는 시류(時流)와 더불어 변천하는 것도 아니다. 진리란 항상 불변이며 인간이 살아가야 할 지표와 규범 역시 항상 변함없이 그리스도 말씀안에 있는 것이다 세상이 모두 타락해 간다 해서 자기가 타락해도 좋다는 주장은 용서될 수 없는 것이며 그것에 대한 천벌 역시 피할 수 없는것이다. 만연되는 오류속에 휩쓸리지 말고 우리는 좀 더 냉철하고 현명한 눈으로 진정한 정답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갈 바가 어디인가를 찾아내어 그리로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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