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옆에 살면서 극성스런 종소리에 시달리던 어느 친구의 하소연-. 조그만한 면소재지 언덕배기에 오래전부터 교회가 있었는데 무슨 분규가 있다는소문이 들리더니 얼마 안있어 주택가에 새교회가 또 생기더란다. 그 친구, 저녁늦게까지 손뼉을 치며 부르는 찬송가 소리와 새벽 4시면 2백여 번이나 치는 종소리의 진동을 참다못해 교회 측에 항의했더니 예수님도 이웃에 인심을 잃었다며 가볍게 받아넘기더란다. ▲이웃에 인심을 잃었다니 생각나는 말씀이있다. 마태오 복음 13장57절에「어디서나 존경받는 예언자도 자기 고향과 자기집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합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다, 예언자가 존경 못받는 이유가 여러가지 있겠지만 무엇보다 질투심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F. 베이컨은『가까운 친척이나 동료 또는 같이 자라난 사람들은 그 중에 누가 출세를 하면 그를 질투하기 쉽다, 그가 그들의 불운함을 절실히 느끼게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베이컨은 이어 질투의 눈은 그 대상이 영광이나 승리의 한복판에 놓였을 때 가장 큰 충격을 나타낸다고 부연했다. 이 말은 지위가 높을수록 더욱 심한 질투의 대상이 된다는뜻 이다. 흔히 지도자는 외롭고 걱정많고 위태하다는 말을 듣는다. 위태함은 바로「동료」와 「같이 자라난 사람들」로부터 질투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옷이 평범해야 한다는 출세비결도『사람의 눈에 띄는 곳에 질투가 모이는』것을 피하기 위한 방법일 것이다. ▲그래서 현명한 지도자는 문제가 대단치 않을 경우 자기의 뜻을 굽히길 잘한다. 질투앞에 희생을 바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희생이 도리어 화근이 되기도 한다. 논어에서 공자가 지도자의 조건으로 적시한, 지식ㆍ인ㆍ위ㆍ예 가운데「위엄」으로 부하를 대하지 못하는 결과를 빚는 경우다. 이런 결과로 이른바「우유부단하다」「착하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질투는 인류역사와 더불어 있다. 「아담이 한번 늦게 돌아왔을때 이브는 늑골을 세기 시작했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질투심은 자기 열등감의 표현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만을 불행하게 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때문에 인격수양과 자중자애로 이를 극복해야 한다. 오직 자기의 사명에 열중하고 거기에 만족하며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면서 냉혹한 자기반성을 되풀이하는 길 밖에 없다. 말로는『겸손겸손』하면서 질투심만 어설프게 드러내는 세태가 한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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