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전례의식이 바뀐후 미사해결을 해온지 십여년이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복사 할때는 뭣인지도 잘모르면서 그냥 라띤말의 사제의 계에 응을 했다. 그러나 미사해설을 하면서 좀 더 진지하고 알뜰한 자세로 의식에 파고드니 미사에 참례가 아닌, 사제와 함께 거룩한 제사를 드리는 것임을 알았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교우들이 미사 전례의식의 참석이 단순한 참례가 아닌 사제와 일체되어 거룩한 제사를 봉헌하고 있다고 생각할까
주일날 그저 빈손으로 미사시간에 딱 맞춰오거나 아니면 십분정도 여유(?)있게 와서 뒷자리나 문쪽자리에 앉았다가 미사가 끝나기 바쁘게 벌에 쏘인 사람처럼 성당을 빠져 나오는 교우들을 자주본다.
그러므로 항상 앞자리는 비어있거나 넓게 앉았고 문쪽이나 뒷자리는 언제나 만원이고 붐비게 마련이다.
미사시작전『늦게 오시는 교우님을 위해 앞자리에 앉아달라』는 해설자의 부탁은 몇 사람 외에는 들은척도 않는다. 앞좌석을 비워놓고 뒷좌석이나 문 옆좌석을 구태여 찾는 교우의 심리나 행동은 앞좌석이 상좌라는 생각에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일까. 아니면 평소 자기의 사회적인 행동이 떳떳치 못해서일까.
아니면 미사가끝나자 마자 빨리 성당밖으로 나가기에 편리해서일까.
그간 미사해설을 해오면서 관심있게 보아왔다. 늘 뒷좌석에 앉는 신자는 정해져있고 미사후 본당의 행사안내나 특별강연이나 아니면 주일마다하는 십분교리에는 오불관언으로 일찍가는 신자는 늘 바쁘게 가는것 같다.
그저 매사를 적당히 얼버무리고마는 우리의 습성, 뒷전에서 비합리적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타성, 이런일에 습관화된 오늘의 사회에 사는 우리이기에 그것이 잘못된것이거나 죄스럽게 느끼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미사의 본질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주일날은 어쨌든 성당에는 다녀와야 한다는 고정관념 내지 습관화에서 오는 무의식적 행위에서 오는 결과일까.
이 땅에 그리스도의 복음의 씨앗이 심어진지 어언 2백년, 그동안 숱한 우리 선조님들의 선혈로 세워진 이 복음의 전당, 주와의 화해와 인간과의 정과 우의를 나누는 이 복된 자리에서도 우리는 언제나 뒷전에서만 팔짱끼고 구경하는 식으로 미사를 지내도 괜찮은가. 이런 소극적인 사고방식이 2백년이 지난 이제 겨우 형제 자매 합해서 1백만이다.
『양보다는 질이 문제』라는 말이 있지만 개신교의 양적인 발전을 간과할수 만은 없을 것 같다.
미사전례는『모든 교회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척 행위이다. 또한 그 효과는 다른 어떤행위보다 우월적인 거룩한 행위로 비중이 크며 이상 완전한 기도는 없다』라고 공의회 전례헌장은 시사하고 있다.
또 전례헌장 19조에는『영혼의 목자는 전례교육과 아울러 능동적 참여를 위해 그 방법을 연구노력하고 힘써야 한다』고 규정지워 말하고있다.
복음전파도, 성당건립도, 부조리 추방도, 나아가서 평신도 사도직의 적극적인 활동도 미사전례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없이는 그 목적 달성이 어렵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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