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19 전 해마다 어린이날이면 대통령을 서울운동장에 모셔다놓고 어린이들의 재롱을 보여드리는 단체가 있었다. 자유당 정권의 이야기다.
대통령에게 보여드리는 재롱피우기이므로 서울안 국민학교에서는 어린이날을 훨씬 앞두고 그 연습에 열을 올렸다. 만여명 어린이가 한사람같이 움직여야 하므로 큰일이었다. 어린이날에 이르러서는 꼭두새벽부터 동원이 되어 틀리지 않을때까지 거푸 연습들을 하노라고 진땀을 뺐다. 변두리에서 아침도 못먹고 먼지속을 걸어서 기념식장까지 모인 어린이 가운데엔 허기가 지고 지치고 햇볕이 뜨거워서 턱턱 쓰러져 들것에 실려나가기도 하였다. 어린이날이 아니라 들들볶이는 고달픈 날이었다. 그 당시 나는 어린이날을「어른들의 반성의 날」로 삼자고 하면서 해마다 그날만은 어린이들 앞에 얼씬도 하지않고 숨어지냈다. 문을 걸어 잠그고 방속에 들어앉아 조용히 뉘우치고 다짐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거리나 모임에서 끝끝내 나의 모습을 찾아내지 못하자『아니 그날은 어디가고 없었소? 』하고 시비를 거는 사람조차 있었다.
어느해던가. 어린이날 기념식장에 나타난 노 대통령이 한말씀하는 것을 생방송으로 중계를 하는데 라디오통에 귀를 대고 아무리 들어봐도 어린이날이란 말이 연설속에 안나왔다. 『나를 위해서 어린학생들이 마스게임을 잘들해 보여주니 대견하다』는게 고작이었다. 노 대통령은 그날이 어린이날인 줄도, 그래서 기념식을 올리는줄도, 어린이 잔치에 손님으로 온 줄도 까맣게 모르는 모양이었다. 말해 무엇하랴. 4ㆍ19때 학생들의 함성을 대통령은 당선을 축하하는 만세소리로 착각했다지 않은가?
80노인의 처사를 이제와서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네 평민에게도 그와 비슷한 일이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으리으리한 자가용차에 떡 버티고 앉아 지나가는 것을 거리에서 발을 멈추고 쳐다볼 때는 저절로 이런소리가나온다. 『가솔린 한방울 안나는 나라에서 자동차로만 다니다니! 한심한 노릇이야』
그러나 내가 자동차를 타고 거리를 달리면서, 얼씬거리는 자들을 내가 볼때는 『저거저거 … 차에 치어 죽고싶은가. 왜 우물쭈물하는 거야? 』하고 소리를 치게된다.
처지가 바뀌면, 생각은 달라지는것일까? 그야말로, 무엇 누러 갈 적 다르고 올 적 다른 것이 우리네 사람마음인가 보다. 「위를 보고 걷자」는 유행가도 잊지마는, 밑을 보고 살아야겠다. 그래야 남의 마음도 알수 있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속속들이 살필 수가 있을것이다.
「만보걷기」는 다만 몸에만 좋을뿐아니라 빗나간 마음을 걸으면서 바로잡는데에도 소중한 단련법이 될 것이다. 거리에서 눈에 띄는것. 귀에 들린것,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 것, 머리에 떠오르는 것들이 뜻하지 않은 깨우침과 뉘우침과 가르침이 되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걸어다니지는 않더라도, 높은분들이 뭇사람들과 더불어 버스나 지하철로도 볼일을 보러다닌다면 서먹서먹함이 훨씬 덜할 것이다. 하기야, 자전거로 출근하는 자유당때 어느 장관뒤를 호위찝차가 빵빵거리며 뒤를 따랐고, 외식을 금해놓고는 자기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점심도시락을 집에서 자동차로 날라다먹은 고관도 있었다니, 이러한 「눈가리고 아웅」은, 부질없이 윗사람과 아랫사람을 더크게 갈라놓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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