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불행은 한마디로 말해서 모두가 하느님보다 높다는 교만의 산물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제자가 스승보다 높을 수 없다』고 하셨는데 그 교훈을 무시하고 현실은 그를 믿는자는 20세기의 바보군상으로 조소를 받고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도『스스로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고 스스로 높이는 자는 낮아진다』고 하실 뿐아니라 하느님의 신분을 가지고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말구유에 탄생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호화주택에 주지육림을 베풀고 교만의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들이 많으니 어느면으로 봐도 하느님보다 높고 마음가짐도 반대현상이다.
귀순자의 말에 의하면 밥을 먹거나 강단에서 이야기를 하려면 하느님이 아니라 으례히 괴수 김일성의 덕분이라고 하니 말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없는 자는 있는 자의 탓을 비롯해서 여는 야당을, 야는 여당을 비난하고, 국민은 정부가 잘못한다고 데모를 하고 정부는 국민의 잘못이라고 법 조문이 늘어난다.
역사 시초부터 원조의 교만으로 죽음을 초래했고 한 성직자의 교만은 교회분렬을 조장했으며 오늘의 교만은 형제간에 대화를 단절시키고 칼을 갈고있지 않는가? 여기에 대하여 아무리 교만하지 않다고 변명을 해도 마치 머리를 숨긴 꿩의 꼬리가 나와있듯이 천태만상의 분렬의 꼬리가 길게 뻗혀있는데 어찌할 것인가? 진정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먼저 하느님 앞에 한결같이 네탓이아니라 내탓이라고 자백을 할때 발이짧은 평화가 문턱이 낮아서 쉽게 들어오게 될것이다. 문제는 그 높은 목을 베이려고 애쓸것이 아니라 겸손의 무기로 다리를 짤라야 일어서지 못할것이다. 만일 이를 무시하고 물질과 돈 과학과 힘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교만은 양손에 칼을 쥔것이니 치는대로 조각이 나서 분렬은 투쟁을 동반해서 죽음을 초래할 것이라 믿는다. 이미 남풍을 타고 교만의 개선가가 들려오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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