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운동 중계방송을 들으면 서로 맞붙은 두 단체의 어느 한쪽을 먼저 부를 수 없어서 군산상고 대 부산상고 부산상고 대 군산상고 이런식으로 차례를 바꿔 두번씩 되풀이하기가 일쑤다. 공정을 기하노라고 그러는거 겠지만 두차례 싸우는 것으로 들리기도 해서 어리둥절해질때가 많다. 연고전이나 고연전도 마찬가지여서 서로 둘러가며 한 해씩 바꿔부르는 모양이다.
1920년대에 들어서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여성해방 운동이 일어났을때 어느 강연회에 가보니까 비녀를 꽂은 쪽을 베어던진 단발머리 신여성이 단위에 올라가 열변을 토하는데『여러분! 나는 남녀평등을 절대 반대합니다. 왜 남자를 먼저 칩니까. 마땅히 여남평등이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인 여성들이 발을 구르며『옳소』『옳소』하는것이다.
그러나 평등이나 공정은 그런데 있는 것이 아닐것이다. 부부라고 하면 남편을 먼저 따지지만 내외이라고 하면 아내를 먼저 치고 있지 아니한가. 『허울좋은 하눌타리』라는 속담도 있지마는 겉으로 보기엔 번드르르하지만 속이 텅비어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가족계획을 떠드는 이들이『딸이든 아들이든 구별말고 둘만 낳자』고 성화이지마는 가족제도나 사회제도가「남존여비」로 무장되어 있는 한 아이수효만 줄인다고 해서 잘살아지는 것은 아니다.
「남존여비」도 아니고「여존남비」도 아니고「남비여비」는 더군다나 아닌「남존여존」의 사회풍토가 마련돼야만 비로소 복지국가를 이룩할 수가 있을 것이다 「남존여존」인데 남녀평등이면 어떻고 여남평등이면 어떻단 말인가. 실력대결인데「연고전」이면 어떻고「고연전」이면 어떻단 말인가.
「부창부수」란 말이있다. 남편 뜻은 아내가 잘 따른다는말이다. 그런데 이거야말로「부창부수」라고 한글로만 적을 필요가 있다. 때로는 남편이 아내의 옳은 뜻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해방 전 해에 경기도 시흥이라는 곳으로 일본에서 전쟁을 피해 와서 산 적이 있다. 그 시골에 오막살이 외딴집 한 채가 있었는데 그 집에 사는 아낙네가 아기를 낳았었다. 소문에 들으니 세 쌍둥이를 낳았다는 것이 아닌가. 쌍둥이라도 큰일이겠는데 셋씩 생겼으니 어떻게 기를 것인가. 「무슨 수로 셋을 키우겠소.」
『그러게나 말이지요. 형세나 넉넉하면 유모를 대든가, 우유를 먹이든가 하겠지만, 째지게 가난한 터에 그럴수도 없고 … 가난한 짐을 골라 셋씩 한꺼번에 태어난 어린것들이 불쌍하지.』동네 아낙네들이 우물가에 모여 떠드는 소리였다. 그런데 몇 달 뒤에 들으니 세 쌍둥이가 엄마젖으로 무럭무럭 잘 크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두 아기가 엄마젖을 양껏 먹고나면 남은 한 아기가 두 젖을 번갈아 먹어 양이 찬다는 것이다. 신기하다기보다 신비로운 사실이었다. 자상하고 인정어린「신의 섭리」를 이때처럼 삐저리게 느낀적이 없었다. 또한 이처럼 공정한 신의 섭리를 미옥한 인간들이 스스로 짓밟고 나서 울고 불고하는 꼴이 한없이 밉살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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