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경우 1983년에 한 달 소득이 10만원도 안 되는 근로계층이 아직도 전체 근로자의 58.9%나 된다.』(83년9월17일자 동아일보 사설). 그로부터 3년 후 86년 현재 지난달 9~10월 7백 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중소기업 무등 양말에서는 기본급 6만 9천원에 잔업까지 하루 10시간 이상을 죽도록 일해도 월급 10만원 미만인 16~17세의 어린 여성근로자들이 생존권 투쟁을 벌이다가 그 중 두 명은 면도칼로 손가락을 베어 흘린 피로 노조탈퇴각서를 작성해야 했고 40여명이 사표를 제출한 상태에 있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 농민들은 가구당 평균 2백만 원 이상의 빚더미에 짓눌려 파산지경에 신음하고 있으며, 이주 농민들은 도시 변두리로 밀려나 빈민으로 철거민으로 몰려다니며 피 맺힌 생존의 절규를 토하고 있다.
또한 경제기획원이 발표한 82년「한국 사회지표」에 의하면,『월 소득 25만원 미만의 가구가 전체가구의 65.9%이고 이중 13만원 미만인 영세민가구가 29%이며 반면에 50만 원 이상의 가구는 7.6%에 불과하다』이렇듯 국민절대다수인 농민ㆍ노동자도시빈민의 최저생계비에 훨씬 못 미치는 소득으로 가난과 병고에 찌들고 있다. 눈길을 인류 전체로 돌려보면 『발전된 나라들의 국민들(인류의 29%)이 세계자원의 75%를 소비하고 있으며 그들이 세계 총 생산의 88%무역의 80% 공업의93% 과학기술의 1백%를 관장한다. 인류역사상 굶주린 사람의 수는 현재에 와서 가장 많아졌고 지금 10억의 인구는 영양부족이고, 4억 5천만은 심한 영양부족이고, 그 심한 영양부족자의 60%는 극동의 농민이다. 매년 영양부족과 질병으로 인해서 목숨을 잃게 되는 어린이의 수는 발전도상에 있는 나라에서 5천만 명이다.
그런데 심하게 영양이 부족한 4억 5천만을 먹여 살리는 데는 발전된 나라에서 사용하는 가축 사료의 15%면 충분하다』(83년6월호 기독교사상 72~75쪽 참조)
무릇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까지를 포함하여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은 하느님 한 분 뿐이시다. 개인의 능력까지를 포함하여 땅, 자원, 기타 모든 것의 궁극적인 소유권은 하느님 한분께 있다. 태어날 때와 죽을 때 우리가 빈손임을 보면 이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인간은 땅과 자연자원과 재화를 다른 인간보다 더 차지하고 더 소비하고 누릴 권리와 자유가 도무지 없다. 인간은 다른 인간보다 앞서고 위에 올라서고 우쭐대고 잘나체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 인간은 다른 인간 위에 군림하여 자기 뜻을 강요할 아무런 권리가 없다.
어떤 인간이 다른 인간보다 지능지수가 높고 기타 자질과 재능이 뛰어나고 운(運)과 기회가 맞아 떨어졌다 해도 그것이 결코 다른 인간보다 더 인정받고 더 소유하고 더 소비할 자격으로 되지 못하며 우수하다고해서 우수하지 못한 사람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고 더 많은 수익을 볼 자격으로 되지 못한다. 설령 어떤 인간이 다른 인간보다 더 노력하고 더 성실했다손 치더라도 그것 또한 결코 다른 인간보다 더 소유하고 더 소비할 자격으로 되지 못한다. 성실한 노력의 댓가는 하늘에서 하느님께 보답 받는 것이지 땅에서 재화와 명성으로 보답 받게 되어 있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되어 있으며 헌신만이 영원하고 초월한 가치로서 빛나야 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이 골고루 나누면서 정을 주고받으며 살라고 맡기신 재화에 있어 그 재화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한쪽으로 치우치고 독점되는 것은 그 유일한 주인이요 소유자인 하느님의 뜻에 위배되며 그 재화에 있어 한편이 이득을 보면 다른 편은 반드시 손해를 보게 되어 있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쉽게 납득하는 가장 엄정한 경제제일원칙이다. 재화의 생산과 거래와 이동의 과정은 그 어떠한 것이 되었든 그 재화의 유일한 소유권자인 하느님의 뜻에 반하여 이익 보는 측(뺏는 측)과 손해 보는 측(뺏기는 측) 이 발생하는 상태는 불의한 질서로서 마땅히 타파되고 전복되어야 할 상태인 것이다.
대저 사기치고 빼앗고 억누르고 때리고 가두고 죽이는 질서와 제도와 법률과 이념과 체제는 그 어떤 것이 되었든 만물과 만민의 소유자요 주인이신 하느님의 뜻에 대항하는 것으로서 반드시 투쟁하여 없애버려야 할 악마의 세력인 것이다. 한 민족이나 국민의 절대다수와 인류의 절대다수가 억압과 착취와 약탈과 침략과 전쟁과 살육의 손쉬운 먹이로 되어있는 현재 상황은 미루지 않고 당장 뒤바꾸어 놓아야 할 악마적인 죄스런 상황인 것이다. 십자가 형틀에 매달린 예수의 단말마는 얼마나 급박하고 절박한 해방과 부활의 절규였던가.
오늘날에도 남미에서 아프리카에서 아시아에서 고난 받는 절대다수 민중이「또 다른 예수들」로서 십자가 형틀에 매달려「마라나타」(주여 어서 오소서)를 절규하고 있다. 새 시대, 새로운 사회, 하느님나라는 우리나라 민중과 전 세계 민중의 목숨 건 투쟁의 피 흘리는 수난으로 그 완성의 단계를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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