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까지만 해도 어리다고만 생각하며 키워온 아이가 어느덧 고등학교 3학년이 됐다. 아침 6시에 집을 나가면 자정이 다 돼서야 힘없이 돌아오는 아이의 까칠한 모습은 반가움과 대견함보다 측은함을 느끼게 해 마음이 더욱 아프다. 내가 대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누어서 하고 싶은 심정이다.
능력있고 적극적인 엄마들은 어느 학원 문제집이 좋으니 준비해준다. 방송을 녹음해준다, 등하교시의 시간과 체력을 아껴준다고 자가용으로 데려가고 데려온다고 한다, 그런 엄마들과 비교하면 마음만 애태우는 나는 엄마노릇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새벽 4시경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하고 아침 먹여 학교 보내고 저녁 늦게 돌아오는 아이를 마중하는 게 전부인데, 그것마저도 체력과 능력에 부쳐 힘겹기만 하니 과연 나는 몇 점 엄마일까 늘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벌써 몇 해째 힘들어하며 계속해오는 공부인데 시험을 보고 성적을 받아온 아이는 계속 제자리걸음이라며『엄마 난 머리가 모자라는가 봐요』하며 좌절하곤 한다. 아이의 이런 모습은 나의 마음을 측은하다 못 해 분노를 느끼게 하며 지옥 같은 입시경쟁에서 아이를 구해주는 것이 부모의 도리가 아닌가 생각도 든다.
한참 자라나는 꿈 많은 그 나이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견디기 힘든 고생을 하는 것 같아 답답하기 만하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그러나 사회활동이나 앞으로 살아가는데 꼭 닦아야할 기본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보자』고 위로 격려하지만 그 말이 얼마나 힘이 될까.
막상 입시 1개월을 남겨놓으니 아이는 입술이 부르트고 입안이 헐어 몹시 괴로워한다. 나는 나대로 평소에 날씬하다는 체중이 더욱 날씬해졌다는 인사를 받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밝았다. 어두웠다하며 불안감이 무섭게 엄습해온다. 이렇게 불안과 긴장이 계속되며 아이의 육체적 건강과 함께 정신적인 건강도 걱정된다.
『우리의 가치관을 어디에 둬야 하며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 또 기성세대 가치관에 대해 갈등을 느낀다.』며 아빠와 진지하게 토론하는 아이를 볼 때는 정신적으로 성숙해 있음에 흐뭇해하며 떳떳한 기성세대, 선배가 돼야겠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다행히 다른 아이들보다 신앙 속에서 자란 탓인지 남의 어려움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부모로서 귀중한 유산을 남겼다는 생각에 주님께 감사드린다. 아무리 바쁜 시험 때라도 주일미사에 참례, 성체를 모시는 아이의 모습은 그 어느 때 보다 대견하다. 주님이 바라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학교에 가는 아이의 뒷 모습을 보며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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