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간에도 10만여 명의 취업지원자들이 불안과 초조로 좁은 문을 뚫고 들어가려는 것을 생각하며, 작년 이맘 때 취직시험에서 생겼던 일화를 혼자 간직할 수 없어서 같이 나누려고 한다.
H 종묘사는 농학출신에게는 전공계통이고, 대학 때 이상이던 농민을 위한 직업이라서 소신을 가지고 지원을 했고, 1차에 50여명이 합격을 해서 5명만 채용하는 면접시험을 치루게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미 결정은 되어 있었다고 하지만 말이다.
『종교 가지고 있습니까?』『예. 가톨릭입니다』화제의 발단은 시작되었다. 여러 가지 교리 중(敎理 中) 주일미사와 노동문제 등이 오고갔다. 나는 가톨릭의 입장을 스스럼없이 설명해 갔다. 그러다가 대학에서 서클 활동한 것이 계기가 되어「가톨릭 농민회」의 얘기가 관점이 되었다.
벌써 면접은10분(分)이상 지나고 있었다. 다른 대기자들은 저 사람은 분명히 합격(合格)이라고 부러워했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면접이 길어지면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남의 속은 알지도 못 하고서 말이다.
그 순간 작년에 이 회사가 조그마한 사건 때문에「가톨릭농민회」로부터 큰 공격을 당했었다는 사건이 떠올랐다.
이제 결단의 시기, 선택의 시기라는 생각과 함께 취직은 못해도 좋으니 정의(正義)를 끝까지 수호해야 한다는 결심이 굳어졌다.
『우리나라 농민(農民)은 힘이 없습니다. 지금 농촌문제를 대변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가톨릭 농민회야 말로 현재 우리농민이 안고 있는 고민과 어려움을 대변하는 단체이기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폭풍은 끝났다. 흥분으로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당당하게 진리를 수호했다는 기쁨 때문에 그 날 소주도 맛이 달랐다.
결과는 당연히 불합격이었다. 물론 그 회사는 사시(社是)처럼 농민의 기업은 아님을 알고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가슴 뿌듯한 일인지 모른다. 부족한 신앙생활이지만 소위 무조건 취직을 하고 보겠다던 그 때의 심정을 극복하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순교자의 후예답게 증거 했다는 신앙의 승리 때문이다.
이 가을에도 신앙인으로서 사회생활에 첫 발을 내디딜 때 더욱 비장한 주님의 칼을 들고 진리를 수호하는 영적 투쟁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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