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대(代)에서부터 이어온 천주교 집안에서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저는 집안 식구들과 함께 조석으로 두꺼운 공과 책을 읽으면서 신공을 드리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땐 성모님께 매달려 기도드리면서 커왔습니다.
그러한 제가 결혼을 하고 직장생활(부산은행)을 하면서부터 저도 모르게 신앙생활이 소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직장 일을 핑계대고 주일미사 빠지기를 예사롭게 하였고, 고백성사는 연중행사였습니다.
이럴즈음에 언제부터인가 제게 이상한 고통이 오기 시작하더군요. 낮에는 전혀 못 느끼는 아픔이 밤만 되면 이상하게 다리가 갑자기 마비되며 엉덩이가 아프더군요.
인근병원에 가서 X-레이도 찍고 종합검사를 해보았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괜찮겠지 하고 약만 먹고 지내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온몸이 굳어지더니 꼼짝을 할 수가 없이 아픈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가족들의 부축을 받아 S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 날 아침 검사결과가 아무이상이 없다는 겁니다. B형 간염이라는 진단만 나왔어요. 그 후 꼼짝할 수 없는 병신이 된 겁니다. 약 40일 동안 대소변을 받아내며 고통을 호소해도 병원에선 저보고 엄살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으로가 퇴원을 했습니다.
그때가 84년 12월경이었다. 초량성당에 계시던 오수영 신부님께서 처음 저의 집에 오셨습니다. 몇 달을 씻지도 못 하고 냄새나는 저의 초췌한 몸을 어루만져 주시며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러다 부산 백병원에 입원하게 됐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맡기고 첫날 검사를 해보았는데 담당박사님 말로는 척수 종양인데 이 병은 척추(요추)부위 뼈 속에 종양이 자라나 척수 속에 있는 신경을 약하게 하는 병이라 합니다. 특히 이 병에 걸리면 다리가 마비되어 불구가 될 뿐 아니라 각 부분의 기능을 마비시켜 신장 및 허리를 못 쓰게 된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고통만 느낄 뿐 신기하게도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의사들은 수술을 하자고 했습니다.
의사 한 사람이 올라와선 수술복을 건네주며 각서를 쓰라는 거였어요. 만일 이 환자가 수술도중에 사고가 날 경우에라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서약서 말입니다.
그 날 수술카를 타고 대기실에 들어가는데 입구에서 있던 제 아내가 묵주를 조용히 건네주는 것이었습니다. 허리부위에 마취주사를 찌를 때 나는 묵주로 찾았습니다. 약간씩 감각이 둔해져 오는 나의 다리가 어쩌면 이대로 차갑게 죽어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살을 째고 뼈를 잘라내는 대 수술이 시작 됐습니다.
정신은 더욱 더 맑아지고 부딪치는 수술기구들의 파음이 막은 귀를 더욱 어지럽게 만들더군요. 저는 천천히 그 소리를 잊으려고 주님께 더욱 크게 외쳤습니다.『주님 저에게 용기를 주십시오』로사리오 기도를 시작했어요. 뼈를 자르는데 어찌나 몸이 흔들리는지 전 이렇게 된 상태에서 마취가 없어지면 저는 죽은 거나 다름없으리라 생각되더군요. 아련히 멀어져가는 지난날의 그 고통을 생각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한참 후에 따끔거리는 바늘꿰메는 느낌에 이젠 다 됐구나 생각하며 같이 계신 성모님께 감사드렸어요. 당신의 힘과 놀라운 은총으로 이렇게 용감히 받아 냈다고 장장 6시간의 대수술이었습니다. 수술결과는 놀랍도록 양호하게 완쾌되어 갔습니다.
지금은 건강하며 이 기회에 저는 많은 믿음을 배웠고 주님의 참사랑을 배웠습니다. 주님께선 항상 내안에서 계시고 우리들 가운데 계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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