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하순에 접어들면서 서울근교의 산악은 정말 아름답고 깨끗하다 아직 푸른색이 있는가하면 노랗고 붉은색들이 자연스럽게 군데군데 자리 잡아 색들이 조화를 이루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한국의 가을 단풍을 즐겁게 감상하게 한다. 더구나 맑은 가을 날씨는 단풍의 절경을 돋보이게 한다. 그런데 이산 하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얘기 거리들은 왜 그렇게 침울 하기 만한가.「마르크스ㆍ레닌당 결성기도」「노동자 해방투쟁 위원회」「6ㆍ25는 민족해방투쟁」등의 낯선 말들이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오늘 저녁 신문에도「철야 9백 명 전원 연행할 듯」이라는 굵은 글씨가 눈앞을 가로막는다.
어째서, 도대체 이 지경까지 되었단 말인가?
이솝 이야기가 생각난다.
양치는 장난꾸러기 목동이 거짓으로『늑대요』라고 소리 질러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보며 재미있어하다가 정작 늑대가 나타났을 때는 자신이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이 우화가 오늘의 우리사회에까지 등장,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다.
나는 초등학교 때 선생님으로부터 북한의 선거제도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철저한 감시 하에 찬성과 반대라는 두 투표함에 투표를 해야 하는「눈감고 아옹」하는 선거제도여서 1백% 전 국민투표에 1백% 전원 찬성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이가 당선된다는 것이었다. 나와 내 친구들은 깔깔거리고 웃었다. 어이가 없어서. 몇 해 전이 던가. 우리에게도 1백% 가까운 찬성투표가 있었다. 그 때는 껄껄 웃었다. 이 웃음은 바로 그 옛날 그 웃음과 같은 웃음이었지만 나이가 먹다보니「아」가「어」로 바뀐 것 뿐 이었다. 한 사람의 발언이 한 집단에게는 용공이요 다른 한 집단에게는 자유발언이라고 싸우고 있다.
엄연한 한 가지 색깔을 놓고「붉다」「푸르다」한다면 어떻게 국가장래가 달려있는 개헌문제를 놓고 같은 자리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겠는가.
밖에서 불은 타들어 오는데 방안에선 싸움만하는 격이니 국민은 도대체 납득이 가질 않는다.
언젠가 TV에서 녹화 중계하는 세계선수권 테니스경기를 본적이 있다. 두 선수의 경기를 본적이 있다. 두 선수의 경기 모습보다 관중의 의식 수준을 보고 감탄의 말이 저절로 나왔다. 서비스 할 때 몇 천 명의 관중이 하나같이 숨을 죽이는 의식수준, 그들 대부분이 테니스를 즐기는 아마추어들임은 분명 할 것이다.
자신들이 발휘하지 못 하는 기술을 가진 선수들에게 몇 천 명 씩 운집한 관중들은 선수들의 멋지고 기막힌 기술 하나 하나마다 탄성과 격려, 부러움의 박수를 아낌없이 보내고 있었다.
우리 국민 수준도 20년 전의 국민수준은 아니다. 이제 우리 국민은 국회에서 단상을 점거하고 물리적으로 치고받고 싸우며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고 하는 데는 식상 할 대로 식상했다. 그들은 우리의 국민수준을 모르는 것일까. 그렇게 안 해도 판단할 줄 알고 잘 잘못을 분명하게 가릴 줄 안다는 것을. 이제 높은 자리에 있는 정치인들은 국민을 이용하려 하지만 말고 무서워 할 줄 알아야 된다. 국민 학생이 테니스시합을 하는 데는 수 천 명에 관전하지는 않는다. 국민을 이끌어 가야할 정치인들이 테니스를 갓 배운 어린아이와 같다면 국민에서 외면을 당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결국 나라에는 정치가 없게 될 것이다.
이러한 우리시대에 꼭 필요한 것은 진실을 토대로 한 솔직한 대화이다. 하느님께서 아담의 범죄를 아시고『아담아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하고 물으셨을 때 아담은 에와 에게 핑계를 대고 솔직하게 자기 죄를 밝히지 못 했으므로 하느님께 벌을 받게 되고 대화가 끊기게 되었다.
아담이 자기의 잘못을 진실 되게 인정하고 용서를 청했다면 적어도 하느님과 대화 할 수 있는 관계까지 잃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시대에는 진실이「다수」라는 손의 수효로 짓밟히고 있다. 거룩한 양심과 하늘의 진실까지 다수라는 횡포에 감추어지고 숨이 막혀 버리고 있다. 다수라는 손의 수효도 반드시 진리에 바탕을 두지 않으면 무너지는 법니다. 지금은『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 이다』(요한8, 32)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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