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예기치 않은 일에 놀라고, 가슴을 저미는 아픔에 진땀을 흘려야할 때가있다. 아무리 곧고 선량하게 살려고 애써도 본의 아니게 상쾌하지 못한 일에 휘말리어 곤경을 치루어야 할 경우를 만나게 된다.
두어 달 전, 별로 의심 없이 친했던 교우로부터 심한 배신을 당했다. 강 건너 불로만 보았던 불행한 일이 나를 덮친 것이다. 나를 속여 보증인으로 세워놓고 돈을 빌려 도망을 쳤으니 낭패가 아닌가. 현실적으로 액수가 많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배신감에 시달린 영혼은 평화를 유지할 수 없었다. 특히, 딱한 사정을 호소하는 사람에겐 의심을 가져본 일이 없는 나로서는 사기를 당하기엔 안성맞춤이었으리라.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이라기보다 공동체 안의 교우(신자)로 보았던 나의 안목에도 문제가 있었고, 손쉽게 돈을 빌릴 수 있는 신협이 성당 가까이에 있다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실 아무리 짙은 악이 곁에 있어도 스스로 물들지 않으면 되겠지만 견물생심이란 얄팍한 본성이 꿈틀거리는 인간에게는 충동을 억제하기 힘들었나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복음 말씀을 묵상해 본다.
겉옷을 빼앗거든 속옷마저 내어주고 뺏는 자에게서 되받으려 하지 말라(루가 6, 29~30)고 하셨는데 왜 나는 고통스러워하는가? 억울한 일이나 사기를 당하는 것을 왜 못 참느냐(고린토 6, 7)고 하신 말씀을 어기고 싶어 이러는가? 참고 견디어 보자고 안간힘을 써 봐도 돈을 갚아주어야 된다는 사실로 돌아와 반지를 빼어준 손가락에서 흰 테를 볼 때 서글픈 마음이 앞서고 항상 기뻐하라(데살로니카 5, 16)고 하신 말씀을 지킬 수 없다. 나날이 불어 오르는 연체를 갚기 위해 이리저리 뛰다보면 내 몰골이 처량하고 황량한 우주공간에 외로운 존재임을 절감하게 된다.
「뺏지도 않은 것을 내 갚아야 옮으리까. 주여 자비를 베푸시어 이 곤경에서 나를 구하소서.」나는 부칠 곳 없어 비둘기처럼 울고 비에 젖은 참새인양 떨어도 위안은 멀고 고통은 엄연하여 아픈 상념으로 머릿속이 어수선 했다. 그러나 아무 곳에도 내 방패는 없고 오직 주님께 만의 지할 어떤 가능성이보였다.
결국 나는 사랑이 부족하고 믿음이 약함을 알았다. 겨자씨보다 크다고 생각했던 믿음이 어이없게도 너무 작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차츰 마음의 평화를 얻기 시작했다.
「이 고통과 배신감을 즐거이 참지 못 하더라도 인내로이 참아 이기자. 그리하여 주님께로 조금씩 다가들다. 나를 핍박하는 이를 위해 축복을 빌고 어떤 십자가라도 주시는 대로 받아 순명하자. 기쁘게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자」 이렇게 다짐하면서 오늘도 새벽 미사에 참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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