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절박한 세상을 살고있다. 우리의 주변에는 광분하는 질주가있고 생활을 위한 포효가, 오히려 생활보다 더 절실한 흡사 광적인 가면무도회를 연상케한다.
생활대열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는 목적의식 없이도 질주를 해야하고 절규를 하면서도 그것이 무엇때문인지 스스로도 식별할 겨를이 없다. 그러나 자기를 지키는데만은 어찌 그렇게도 혈안이 되는지 모른다.
도둑을 뒤쫓으면서도『도둑이야』가 아니라『불이야』하고 외친다는 것이다. 언뜻 듣기에는 엉겁결에 일어난 실수인 것 같지만 그것은 아주 지능적인 행위이고 더구나 왜 그래야 했는가를 생각할 때 우리는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웃에야 도둑이 와서 집을 떠가든 자기에게만 피해가 없다면 구태여 뒤쫓아가서 도둑을 잡아주거나 방문 하나 열어볼 필요가 없음을 안다.
그러나 이웃이나 길거리에서의『불이야』의 경우는 문제가 전연 다르다.
자기집의 불일지도 모른다. 우선 급히 뛰어나가서 자기집을 살펴보아야 할것이며, 비록 자기집이 아니라도 발화점이 어딘가 확인해 두기라도 해야하는 자기수호의 만전사상을 또한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기정신일 수 없을 순간에서도 자기를 지키기 위한 놀라운 지능만은 민활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타가 침범할 수 없는, 자기만의 성벽속에서 인간끼리의 대화같은 것은 아예 귀담아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원인이나 방법같은 생성과정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다만 결과만이 지상적이고 절대적일 뿐이다.
즉 사람들의 호주머니 사정 하나도 사람의 인격을 점친다든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또한 길거리에 쓰러진 비참한 역사체를 눈앞에 놓고도 인간적인 연민이나 동정보다는 그에 따르는 보상액수를 계산할줄 아는, 인간 결여의 기계적인 재치가 오히려 높이 인정되는 세상이라고나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무엇인가 잘못된 느낌이다. 정상을 정상으로 보지 못하는 나의 시력탓일까. 아니면 이미 세상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와버린 탓일까.
오늘의 절박한 역사를 만들어낸 어제까지의 우리과거 중에서 우리는 아래의 실례를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밖에서 착한 일을 하고 들어온 자녀를 우리는「천치바보」라는 이름으로 구박했고 시대적 사상에 민감한 교육기관에서도 양심이나 인간을 가르치기보다는 지능에 더 주력했다. 이렇게 몰고 도대체 어디로 가자는 것이었을까? 결국 인간없는 지능위주형의 기형적 고아만을 양산해놓고 우리는 흡족해온 것이며 그 결과로 오늘이란 현실을 울고있는 것이다.
인간교육과 지능교육은 단연코 병행해야 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사회에는 이 인간상실을 관리하는 기관조차 별로 없는것 같다. 다만 종교가 있을뿐이다. 그러나 현실사회는 교회의 사명을 그다지 인정하려 않을 뿐아니라 유감스러운 것은-교회 자체마저 스스로의 막중한 사명을 망각하거나 기피하는 수가 적지 않다고 했을 때 이것이 과연 잘못된 망언일까?
우리는 모두가 가슴을 치며 통절히 반성해야 할 것이다.
물론 어제까지의 우리역사 속에는 그럴수밖에 없었던 응분의 이유가 있었던 것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기대해야 할 내일의 역사만은 삭막한 오늘의 연속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한결같이 충실히 현실을 긍정하면서, 자숙하는 태도로 밝아야 할 내일의 역사를 차분하게 가꾸어야 하며 거기에 다시 풍성한 인간을 펄펄 넘치도록 불러들여야 할 것이다.
그랬을 때 거기에는 주님의 뜻도 같이 계실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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