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초기부터 죽은 이들을 대단한 신심으로 기억하였다. 모든 죽은 이들이 죄의 사함을 받도록 간구하는 것을 장하고도 경건한 일로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위한 대도(代禱)를 바쳤다. (교회헌장 50). 이 같은 교회의 관습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비록 성세를 받지못한 주검이라도 신비체인 교회의 지체로 보기 때문에 교회가 그를 위해 기도를 바치는 것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국법을 어겨 사형당한 사형수의 주검이라 해서 여기서 제외될수 없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공산주의자의 주검앞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데올르기ㆍ사상을 초월하여 모든「인간」을 하느님의 품안에 구원하려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교회는 죄를 미워하되 죄인을 미워하지않는 것을 철칙으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 교도소 사목에 힘쓰고 특별히 중죄인으로 낙인찍힌 사형수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 노력한다. ▲최근 이러한 정신으로 전개되고 있는 교도소 사목이 개가를 올린 사실 한가지가 보도되었다. 서울 명동 유네스코회관 지하다방 인질사건으로 지난 2일 사형이 집행된 윤모군이 자기의 두 눈을 기증한 사실이다. 성모병원은 3살때 오른쪽 눈을 잃은 민모씨에게 이 눈 한 개를 이식, 광명을 되찾아주고 한개는 부산 메리놀병원으로 보냈다. ▲군형무소에서 복역중 천주교 신자가 된 윤군은『눈만이라도 앞 못보는 사람에게 주어 광명을 찾게 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눈을 기증받은 민씨는『하느님께 감사하며 그분의 뜻에 보답하기 위해 맡은바 직분에 충실하여 사회에 봉사하겠다』고 다짐했다. 당년 19세의 꽃다운 나이로 형장의 이슬이 되면서 뭔가 이 사회에 밝음을 남기려 몸부림친 윤군의 얘기는 너무나 애처롭고 갸륵하다. ▲윤군의 눈은 한때 그에게 죄를짓게 한 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눈은 회개와 성세를 통해 어느누구의 눈보다 티없이 깨끗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 그는 자기의 몸과 마음의 등불로 밝게 가꾼 눈을 남을 위해 세상에 남겨두고 떠났다. 그는 그가 남긴 등불이 두 눈을 가지고도 앞을 못보고 구원의 길을 역행하는 많은 사람들을 비쳐줄 것도 기원했을 것이다. 그를 위한 추도미사도 있을 법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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