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순 신부와 장준하씨의 죽음은 교회와 사회에 각각 큰충격을 주었다.
최 신부는 그야말로 은수자처럼 아무도 몰래 선종했고, 장씨는 하산중에 실족사했다. 이렇게 두분의 죽음은 전혀 예상 못한 문자 그대로 급서였다. 두 분에 기대하는 바 컸던 교회와 사회는 슬픔보다도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장씨는그 투쟁경력과 불타는 투쟁의지로 보아 너무 어처구니 없는 죽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영결미사에 참여한 여인들이『가장 싱겁게 가신 분』이라며 원망섞인 애도의 말을 숙덕거렸다. 전쟁의 화신으로 전쟁을 미화하던 미국의 패턴 장군이 교통사고를 당해 전사 아닌 변사한 격이랄가. 참으로 어이없는 죽음이 아닐 수 없다. 그 젊은 여인들은 또『이런 분을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루다니 말도 안된다』는 얘기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흔히 고관을 지낸 인물이 죽으면 사회장으로 하느니 또는 국민장으로 하느니 하고 왈가왈부 한다고 한다. 문상객의 입장에서 상주를 위로하는 말도 되고 그런데다 자기 돈은 한푼도 안드니 그런말이 쉽게 나올성 싶다. 그런말이 나오면 다른 문상객은 상주앞에서 반대할 형편도 못될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일반 국민은 고관이 30년전에 가졌던 현주소와 그 이후의 행적으로 보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장례를 어거지로 치루기 마련이다. ▲하긴 하느님의 눈으로 볼 때, 장례를 거창하게 치루고 안치루고는 아무 상관이 없을것이다. 국민의 혈세를 낭비케 한다면 죽은 이를 오히려 더욱 욕되게 하기 마련이다. 양심가로 알려진 거인들이 애써 가족장을 하도록 유언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장씨가 광복군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고, 막사이사이상을 받은 위대한 언론인이었으며 자유민주를 위한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지만 그도 역시 가족장을 원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 젊은 여인들의 불만은 부질없는것이라고 여겨진다. 무엇보다 스승 예수의 죽음과 그 제자들 및 무수한 순교 선열의 죽음을 보면 위안과 어떤 희망까지 가질수 있을것이다. 죽음과 장례의 외적현상과 규모보다 죽은 이가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 무엇을 남겨주었고 심어주었는가가 문제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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