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이다. 어느 극장에서 신파 비극을 하는데 한창 슬픈대목에서 관객 한 사람이 킬킬거리고 웃으니까『웃지마라! 비극이다』하고 고함을 치는 청년이 있었다. 그러자『쉬! 조용해라』하고 누가 소리를 버럭지르니까『입닫혀!』더 큰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웃어서는 안될 판에 청중이 킬킬거려 마침내 연극을 잡치고 만것이었다. 눈물이 헤퍼도 안되지마는 웃음 역시 함부로 터뜨렸다가는 뜻하지 않은 망신을 당하고 만다. 사회에 큰 공적을 끼치고 비명에 숨진 한 여인장례식에서 그의 약력을 읽어내려가던 조객이 얼굴에 시종 미소를 머금어 뜻하지 않은 오해를 받은 일이 있었다는데 생전의 화려한 일자취를 회상하다 보니 자연 얼굴에 화색이 든 모양이었다. 원래 우리나라에는「희로애락」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을수록「점잖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점잖다는 것은 젊지않다는 것이지, 곧 늙었다는 말이겠고 늙었으니 표정조차 굳어버릴 수 밖에 더있는가. 오랫동안 기쁨과 슬픔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오는 동안 무딘 감정과 무표정한 얼굴을 지니게 된거나 아닐까.
제대로 웃을줄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남을 웃길줄도 모른다. 요즘 코메디언이나 개그맨의 우스개 소리도 별로 우습지가 않다. 억지로 웃고 마지못해 웃고 대접해서 웃어주는 수 조차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에는 웃는 시늉을 나타내는 말이 참으로 많다. 자그만치 2백가지가 넘는다.
생그레 싱글싱글 씽그레 상긋 생긋 싱끗 상긋상긋 쌩끗쌩끗 따위, 「눈웃음」이 마흔네가지요, 빙그레 방시레 땡그레 방글방글 빙글빙글 방긋 삥긋 벙긋벙긋 방싯방싯 뺑긋뺑긋 따위 입웃음이 여든가지요, 싱글벙글 상긋방긋 씽끗뻥끗 따위 눈웃음이 스물여덟가지요 깔깔 껄껄 낄낄 킬킬 아하하 이히히 하하 해해 후후 킥 킥킥 따위 목웃음이 스물여섯가지요, 흥 힝 하는 코웃음이 두가지요 피 피시시 픽 픽 픽따위 입술웃음이 일곱가지로 사전에 있는 것만도 1백 아흔 다섯가지나 되는데 목웃음에 한 음절씩을 더한 깔깔깔 깰깰깰 우후후 와하하하 애해해해 으흐흐흐, 홧홧홧 … 얼마든지 늘어나서 웃는 시늉을 나타내는 말이 2백 쉰가지에 이르고 있는것이다. (일간신문에 나고있는「임거정」339회치에「히죽비죽웃기만 하였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역시 사전에는 없는말이다)
그러고보니 우리 조상들은 무감각, 무표정이기는커녕 섬세하고도 다양한 생활감정을 지니고 살아왔음을 알수 있다. 아마도 남의 나라를 대국으로 섬기면서 눈칫밥을 먹으며 눌려 지내는동안, 울 줄도 웃을 줄도 모르는 굳어버린 민족이 돼버린거나 아닐까?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를일도 수두룩하니 자연 표정이 일그러질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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